에릭 가세티 LA시장이 인도 대사에 내정됐다. LA가 대도시이긴 하지만 로컬 정치인이었던 그로서는국제무대에 데뷔하는 셈이다. 인도는 한가한 곳이 아니다. 델타 변이의 진원지여서 그런게 아니라 대중국 압박정책의 핵심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첨예한 국익이 걸린 외교무대에서 그가 어떤 역량을 보여줄 수 있을지 그의 식견과 경험을 우려섞인 눈으로 지켜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가세티 시장이 대사로 지명된 것은 논공행상의 결과다. 바이든 캠프로부터 지난 대통령 선거 때의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해외 알짜배기 잡’이라고 할 수 있는 대사직에 상당수의 비외교관을 정치적 이유로 임명하고 있다. 민주, 공화 어느 정당에 한정된 관행이 아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딸인 캐롤라인 케네디는 주일 대사를 지냈고, 매케인 상원의원의 부인도 대사직에 거명되고 있다.
미 외교협회에 따르면 정치적인 이유로 지명된 대사가 조지 부시 대통령 때는 31.8%, 오바마는 30%, 트럼프는 최근 어느 대통령 보다 많은 43.5%를 차지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큰 손 기부자들이 기용되는 경우다. 지명과 함께 그럴듯한 경력과 이유가 발표되지만 직접 원인은 거액의 정치 헌금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래서 대사(ambassador)와 기부자(donor)를 합성한 ‘기부 대사(ambassadonor)’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미국 정치의 이런 관행에 대해 “세계 곳곳에 시한폭탄을 뿌려 놓는 격”이라는 비판이 있다. 자질이나 경험이 턱 없이 부족한 대사들이 사고를 치거나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에 의해 아이슬란드 대사에 임명된 피부과 의사는 임지에서 총기를 휴대하기 위한 특별 허가를 받아 내려다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를 보도한 프랑스의 르몽드 지는 “아이슬란드는 경찰도 평소에 총기를 소지하지 않는 안전한 나라”라고 꼬집었다. 영국 대사에 지명된 한 프로풋불 구단주는 브리티시 오픈 골프대회를 스코틀랜드에 있는 트럼프 소유의 리조트로 유치하려다 물의를 빚기도 했다.
오바마 때는 캠페인 기금 50만달러를 모금하는 등의 공로로 룩셈부르그 대사에 임명된 여성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무부 내부 자료에 의하면 그녀의 가학적인 매니지먼트 스타일 때문에 직원들과의 심각한 불화와 반목뿐 아니라 여행과 와인 등과 관련된 의문스러운 경비지출 등으로 인해 재임 1년간 대사관은 파탄에 빠진 것으로 보고됐다.
헝가리 대사로 임명된 TV드라마 프로듀서는 “대화 수준의 스패니쉬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 프랑스 대사 지명자는 “요리책을 저술했다”는 것이 발탁 이유의 하나로 발표되기도 했다.
대통령과의 개인직인 친분 등 코드 인사를 통해 발탁된 대사는 주로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시급한 현안이 없는 잠잠한 곳에 배치되는 예가 많다. 미 외교학회는 적절한 경험과 지식이 없는 사람이 고위 외교관으로 임명돼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발표하기도 했으나 귀담아듣는 정당이 없다.
정권을 잡은 정당이나 지도자가 일부 고위직을 자기 쪽 사람으로 채우는 벼슬 전리품 제도인 엽관주의는 관료주의의 폐단을 보완하는 기능이 있다. 하지만 미국의 일부 대사 발탁 사례를 보면 엽관주의 보다 정실주의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되풀이되고 있는 미국 정치의 관행이다.
가세티 시장이 인도 대사에 임명되려면 상원 외교위원회의 인사 청문회를 거처야 하는데 청문회 통과율은 94%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