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은 폭염과 가뭄으로 바작바작 타들어가고, 반대쪽은 기록적 폭우로 물바다가 된다. 한쪽에서는 거대한 화마가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 맹렬하고, 다른 쪽에서는 기습적 수마가 집이며 자동차들을 삼킨다. 세자리 숫자 이상고온이 계속되면서 해안에서는 조개들이 산채로 익고, 광활한 농업지대에서는 과일들이 나무에 매달린 채 조리가 된다. 찌는 듯한 열기에 온열질환 사망이 줄을 잇고, 뜨겁게 달아오른 보도에서는 노숙자들이 ‘물 한 모금’을 구걸한다.
어느 먼 행성이나 먼 미래에 있을 법한 이들 광경은 지난 한주 미국 서부와 북동부 그리고 태평양 연안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공상과학 영화의 장면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에게 닥친 기후위기이다. 기후위기/재앙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느냐가 21세기 인류의 최대 과제이다.
기후는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조건이다. 그럼에도 그 중요성을 우리는 이제야 깨닫고 있다. 불변의 순환으로 생각했던 기후가 이상 징후를 보이자 마침내 이를 의식하게 된 것이다. 소귀에 경 읽기로 수십년 기후변화를 경고했던 과학자들은 다급해졌다. 기후변화는 현실이며 그로 인한 위협적 현상은 점점 잦아지고 점점 거세지며 점점 길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지난 2015년 기상학자들은 남가주에서 산불로 소실될 면적이 2050년이면 배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장기간에 걸친 가뭄에 이상고온이 더해지면서 산야가 광활한 불쏘시개의 장으로 바뀔 것이라는 예측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산불이 이보다 훨씬 심각했다. 2018년과 비교해 2020년에 이미 가주의 산불 피해지역은 두 배로 늘었다.
2020년 가주에서는 무려 400만 에이커가 불탔다. 사상 최악이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첫 6개월 기준, 전년대비 산불은 수백 건 더 많았고, 소실 지역은 배가 넘었다. 기록적 가뭄과 혹서가 빚어내는 일이다. 미 서부지역 가뭄은 20년래 최악이고 100도가 넘는 이상고온은 계속 기록을 경신 중이다. 지구상 가장 뜨겁고 북미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인 데스밸리에서는 지난 11일 온도계가 화씨 134도(섭씨 56.7도)를 가리켰다.
서부지역의 대가뭄은 미국 최대 저수지인 후버댐의 미드 호수에도 영향을 미쳤다. 물이 너무 줄어서 수력발전을 25% 줄이고, 애리조나 네바다 캘리포니아 등 7개주로 보내는 물 배급량을 줄여야할 정도이다. 가주의 대표적 저수지에서는 물이 너무 빠져 수십년 전 추락한 비행기 잔해가 흉물스런 모습을 드러냈다. 서부 지역 저수지마다 물이 메말랐다.
기후위기는 에너지 위기로 직결된다. 기후 물 에너지의 상호관계는 긴밀하다. 폭염에 에어컨 사용이 급증하면 전력난이 발생하고, 가뭄으로 물이 부족해 수력발전이 중단되면 화력발전에 집중하게 된다. 석탄과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사용이 증가하면서 온실가스 배출이 늘고 지구온난화는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의 구도이다.
가뭄 홍수 혹한 혹서는 태고로부터 있어온 자연현상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도가 극심해진 것은 인간의 책임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마구잡이로 개발하고 넘치게 먹고 쓰고 버리며 살아온 생활방식을 이제는 멈추라는 충고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누려온 문명의 이기와 그 편리함은 기본적으로 화석연료 덕분이다. 그 결과가 대기 중에 급증한 이산화탄소이다. 화석연료 사용 시 생성되는 이산화탄소는 지구상 온실효과의 60%를 차지하는 온난화의 주범이다. 교통수단이나 공장가동, 냉난방 에너지를 청정에너지로 대체하는 일이 시급하다.
기후위기와 관련,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것은 육류 소비량이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명절에나 등장하던 소고기는 이제 끼니때마다 없으면 허전하고, 직장인들이 회식자리에서 먹어치우는 고기 양은 실로 엄청나다. 고기가 거의 주식인 미국은 물론, 개도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육류 소비가 늘었다.
소가 문제인 것은 이들이 환경에 끼치는 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남가주에서 북가주로 가다보면 가도 가도 이어지는 소떼 구역이 있다. 방대한 사육농장들인데 이들이 차지하는 땅, 소비하는 에너지와 물 그리고 배설물을 통해 방출되는 메탄가스 등은 지구환경 위협의 1등 요인들이다. 만약 이를 식물성 고기로 대체한다면 물 사용량과 배출가스, 대지 사용면적을 90% 이상씩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고기 좋아하는 식습관을 되돌아볼 때가 되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는 변화를 현실로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 정치권이 먼저 변해야 한다. 구시대 정치인들. 특히 공화당이 화석연료 산업과의 끈끈한 관계를 지속하는 한 혁신적 기후대책은 어렵다. 미국은 이미 지난 4년을 허비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한 것은 다행이다. 청정에너지 개발 및 온실가스 규제 등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재앙의 씨앗을 불러들였으니 재앙을 막는 것도 인간의 몫이다. 자연이 더 이상은 너그럽게 봐주지 않는다. 인간이 변해야 지구 상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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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