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에도 미국인들의 자선기부는 오히려 늘었다. 지난해 기부액은 모두 4,710억달러. 인플레를 감안해도 그 전해 보다 4% 가까이 늘어 사상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기빙USA재단이 한 대학과 공동조사한 이같은 결과는 우선 주식시장의 호황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경제는 움추러 들었으나 미국 억만장자들은 지난해 1조2,000억달러를 더 벌었다. 최고 부자들의 자선이 늘어날 수 있었던 이유다.
물론 불경기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의 기부는 줄었지만 그 빈자리를 메운 의미있는 변화도 있었다. 250달러이하 소액 기부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 구호 단체에 쏟아진 일회성 온라인 기부는 41% 가 늘었다고 한다. 푸드 뱅크, 홈리스 쉘터 등 휴먼 서비스에 8% , 유나이티드 웨이 등 공공 복지기관 기부도 14% 이상 증가했다. 특히 젊은 층의 참여가 두드러진 크라우드펀딩 등은 기부 문화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것으로 조사팀은 평가한다.
지난 달 매사추세츠의 한 여고생은 졸업식장에서 4만달러의 모교 장학금을 포기하겠다고 밝혀 졸업식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도움이 더 절실한 동료 학생들에게 이 장학금이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진학할 하버드 대학에서 학자금 지원이 있다고 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연 1만달러씩, 최대 4년까지 받을 수 있는 공돈을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같은 기부를 엄마로부터 배웠다고 말했다. 서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이민 1세인 어머니는 장애인 시설에서 야간 근무를 하는 등 투잡을 뛰고 있었다. 가진 것이 많아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얼마전 한국의 대통령이 비엔나를 방문했을 때 오스트리아 출신의 두 수녀를 이야기했다. 평생 한센인들을 위해 소록도에서 헌신한 이들을 위해 노벨평화상을 추진하는 움직임도 있다고 전했다. 국가원수가 외국을 방문했을 때 좋은 소재가 되는 외교적 수사이거니 생각했다. 알고 보니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간호사. 20대에 한국에 와 맨손으로 한센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돌보다 대장암 진단을 받는 등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이가 되자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조용히 섬을 빠져나간 사람들이었다. 한국서는 영화로도 나오고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다. 미처 몰랐을 뿐 마더 테레사와 같은 삶이 한 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어디까지 인가. 이들은 전 생애를 이국의 한센병 환자들과 나눈 후 모국의 양로시설 등으로 돌아갔다.
여유는 나눔을 용이하게 하지만 둘은 별개라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다. 돈 벌면 큰 집 사고, 좋은 차 사고, 여행가고, 맛있는 것 먹고… 그러고 나면 특별히 돈쓸 데를 알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한계효용의 법칙에 의하면 쓸수록 만족도는 떨어진다.
그림을 좋아한다고 다 그림을 가질 수는 없다. 여유가 있다고 다 그림을 사는 것이 아니 듯. 그림 애호와 경제적 여유, 벤 다이어그램이 겹치는 교집합에서 비로소 그림은 가난한 화가에게 다음 창작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돈이 다른 사람에게 가서 격려가 되려면 경제적 여유와 마음이 오버랩 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자녀를 대학에 보낼 무렵이면 학비가 아니어도 이것저것 드는 것이 많다. 딴 살림 나가는 아이들에게 챙겨 보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 성능이 업그레이드 된 새 컴퓨터도 원한다. 이 때 랩탑 가격 정도의 커뮤니티 장학금은 보통 가정에 실질적인 도움도 되고, 아이들에게는 뜻밖의 기쁨이 된다. 누구에게는 큰 부담 되지 않는 배려가 어떤 이들에게는 생각밖의 큰 격려가 되는 일들이 종종 있다.
지금은 한국에 귀국한 메이저 리거 추신수 선수는 지난해 텍사스 레인저스 산하의 마이너 리그 선수 190여명에게 1,000달러 씩을 기부했다. 팬데믹으로 프로야구가 개점 휴업일 때였다. 통장에 잔고가 달랑거리던 선수 중에는 지금도 ‘추신수의 선물’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 자신이 오랫동안 마이너 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봤기에 가능했던 나눔이었다.
받는다는 것은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받기보다 주로 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드러내 놓고 잘 말하지 않는 것은 나눴을 때 오는 기쁨이다. 같은 기쁨도 받았을 때와 나눴을 때의 기쁨은 많이 다르다. 그 느낌이랄까, 시효랄까, 기쁨에도 질이 있다면 그 질이랄까, 이런 것들이-. 이 은밀한 기쁨이야말로 나눔을 가능케 하는 힘중의 하나가 아닐까 짐작한다. 걷지 않는 자가 깊은 산을 경험할 수 없듯 나눠 보지 않은 사람은 가 닿을 수 없는 그 세계. 나눔의 오묘함은 거기 있다.
한 TV방송사와 푸드 드라이브를 하고 있는 마켓에 갔다가 계산대에서 5달러를 기부하고 나오면, 적어도 마켓을 나와 차에까지 걸어가는 동안은 뿌듯하다. 그 행복감은 마켓에서 5달러 무료 쿠폰을 받은 것과는 또 다른 것이다. 사람 마다 숨어 있는 나눔의 DNA는 언제든 일깨울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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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