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08세의 ‘고펀드미’ 사연

2021-07-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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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시작돼 미국 최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고펀드미(GoFundMe)는 인생극장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사연들을 담고 있다.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기 위한 모금에서부터 슬픔의 무게를 덜어주기 위한 모금 등 인생의 희로애락이 그 안에 펼쳐진다.

누구든 도움이 필요하면 이를 이용하는 것이 한 추세가 되었는데 최근에는 108세 노인이 고펀드미의 문을 두드렸다. 매서추세츠에 사는 줄리엣 번스틴이라는 할머니이다.

1차 대전 이전에 태어나 뉴욕시 교사로 평생 일한 줄리엣 할머니는 1970년대 은퇴한 후 케이프 코드의 집에서 반세기를 살아왔다. 정치사회 의식이 강한 할머니는 은퇴 후에도 지역 여성유권자연맹 회장 직을 맡는 등 시민활동가로 열심히 일해 여러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할머니에게 문제가 생겼다. 정신은 맑은데 몸이 너무 노쇠해진 것이다. 통증이 심해 걷기가 어렵고, 더 이상 음식을 조리할 수가 없다. 목욕하고 옷 입고, 화장실 가는 일도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하다. 하루 몇 시간 도움을 받다가 최근 24시간 도움이 불가피해지면서 할머니에게 닥친 것은 재정난.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아이가 몹시 아픈 사람을 위해 (모금) 하는 걸 봤어요. 그래서 생각했지요.”

할머니는 아들에게 부탁해 고펀드미 계정을 만들었고, 모금 두달 동안 1,000여명으로부터 10만 달러를 기부받았다. 덕분에 할머니는 한동안 돈 걱정 없이 홈케어를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문제는 이것이 임시방편이라는 사실이다. 홈케어 비용이 워낙 비싸서 기금은 머지않아 바닥이 나고 만다. 주택담보 융자는 이미 최대한 끌어다 썼고, 60대 중반에서 80세의 고령인 자녀들의 도움도 한계에 달했다.

줄리엣 할머니가 당면한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대부분의 미래이다. 병들어 장기요양이 필요하면 부유층은 자신의 재력에, 빈곤층은 정부지원에 기댈 수 있지만 중산층은 도움 받을 길이 없다. 각자도생할 뿐이다.

줄리엣 할머니가 돈 걱정 없이 장기간병/요양 혜택을 받으려면 메디케이드 수혜자가 되어야 하는데 매서추세츠에서 이 기준은 월수입 2,000 달러 이하. 소셜시큐리티와 교사연금을 받는 할머니의 수입은 이를 초과한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메디칼 수혜는 월수입 1,200달러(부부 1,700달러) 이하, 그리고 집 한채와 자동차 한 대 제외한 재산이 1만달러 좀 넘을 때 가능하다. 평생 일하고 세금 낸 중산층이라면 소셜연금이 보통 이를 넘으니 메디칼 대상에서 일찌감치 제외된다. 대신 장기요양 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가입연령이 보통 60세 이하이고 건강에도 문제가 없어야 한다. 40~50대 건강할 때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인데, 당장 살기 바빠서 장기요양보험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대부분 은퇴자들은 메디케어 하나에 의존하는데 이때 할 수 있는 것은 병들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일. 병들어도 오래 앓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뿐이다. 메디케어 HMO가 제공하는 장기요양 기간은 병원퇴원 후 회복시설에서 최고 100일.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할지 막막한 게 대부분의 현실이다.

센서스국에 의하면 85세 이상 인구는 현 650만에서 오는 2035년이면 1,180만명으로 거의 두배, 2060년이면 거의 3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 많은 인구가 장기요양이 필요할 때마다 고펀드미 캠페인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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