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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

2021-07-08 (목)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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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했던 대로 인도발 델타 변이는 빠른 속도로 세를 넓혀 가고 있다. 이른바 ‘돌파감염’도 걱정이지만 더 문제는 아직 접종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다. 백신이 없어서 못 맞는 나라가 대부분이고, 한국서 주사 맞으러 일부러 비행기 타고도 오는 마당에 지천에 널린 백신을 외면한다는 것은 복에 겨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12세 미만 어린이를 빼면 미국의 백신 미접종자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접종을 거부하지도,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맞겠다고 나서지도 않는 사람이 5,500만명 쯤 되리라고 한다. 나머지는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믿음은 종교적인 신앙이나 특정 이념의 신봉과 큰 차가 없어 보일 정도로 강고하다.

이런 사람이 가정에 있으면 가족 간에도 분란이 생긴다. 함께 식당에 가기도 꺼리게 된다. 백신 때문에 형제끼리 부부가 갈라진 한인가족도 있다. 더 문제는 일부 영어권 한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셜 미디어로 백신 거부를 정당화하는 이론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면서 확신은 굳어진다.


이들은 빌 게이츠 현상수배 전단을 퍼나르고, 감염병 전문가 앤소니 파우치를 범죄자로 규정한다. 1시간이 넘는 동영상을 보면서 백신 유해론이나 무용론의 논리를 다진다. 대표적인 백신 음모론자로 꼽히는 인사가 지역을 방문하면 직접 집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이런 한인 중에는 전문직 종사자, 의료인도 있다.

이들은 백신을 거부하는 이유로 무엇보다 안전문제를 든다. 효능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이번 백신은 급히 개발되고, 졸속으로 승인돼 안전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지금의 코로나 백신은 모두 정식 승인에 앞서 긴급 사용이 승인된 것은 맞다. 하지만 졸속 개발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코로나 백신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화이저와 모더나 백신 개발에 사용된 mRNA 방식은 코로나 백신을 제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아니다. 전령RNA방식은 1990년대 초반부터 30년가까이 연구되어 왔다. 백신은 원래 죽은 바이러스나 희석된 바이러스를 사용했다. 이 때문에 인체에 투여하면 항체가 생긴다. 하지만 전령RNA는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는 통로를 차단한다. 바이러스를 직접 투여하는 대신,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는 도구인 표면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처음 맞는 적이 아니다. 전부터 정체는 파악되어 있었다. 20여년전 사스(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나 10여년전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는 모두 코로나가 일으킨 감염병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코비드-19의 원인균은 사스 바이러스와 80%가 유사하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백신은 단기간내 개발이 가능했다. 축적된 과학기술의 개가라고 할 수 있다.

언론에 보도되는 백신의 일부 부작용 사례는 백신 거부론자들에게 호재다. “그 봐, 내 말이 맞잖아”.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로 이용된다. 문제는 극히 일부의 문제가 일반화되고, 전체적인 문제로 과장된다는 것이다. 견강부회, 침소붕대라는 지적이 적절하다. 어느 분야든 균형잡힌 판단은 극단론자들에게 가장 먼 곳에 있는 것중 하나다.

어느 약품도 안전성이 100% 보장된 것은 없다. 아스피린도 인슐린도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 약의 어떤 성분이 특정인에게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앨러지 반응이 생긴다. 페니실린이 앨러지를 일으킨다고 모두 거부한다면, 폐렴과는 어떻게 싸울 것인가. 땅콩이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앨러지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해서 땅콩 버터를 전면 판매금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현명하게 백신의 득과 실을 따져야 한다.

미국에서는 코비드-19와 관계없이 매일 7,800여명이 사망하고 있다. 만약 같은 날 전 미국인이 백신을 맞고, 이중 7,800명이 숨졌다면 사망원인을 백신으로 돌릴 것인가. 접종 후 발생한 백신의 부작용과 사망의 인과관계가 확실히 규명된 것은 거의 없다.


백신이 바이러스 퇴치에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천연두는 백신에 의해 1980년에 뿌리가 뽑혔다. 백신이 없었다면 20세기에만 3억에서 5억명이 천연두로 숨졌을 것으로 추정하는 과학자도 있다.

텍사스 휴스턴의 한 병원은 알려지기로는 미국 의료기관 중에서는 처음 전 직원들에게 백신 접종을 의무화 했다. 일부 직원이 반발하면서 150여명이 해고되거나 직장을 떠났다. 이 문제는 법정으로 비화됐다. 법원에서 기각됐지만 과학의 문제도 법적 판단에 맡기려는 것은 심각한 미국병 중의 하나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백신 거부는 단순한 실수나 판단의 오류가 아니고, 치명적인 잘못이라고 질타한다. 팬데믹을 퇴치하려면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해야 한다. 백신 접종은 자신뿐 아니라 개인이 이웃에 대해, 인류에 대해 갖는 책임이다. 집단면역이 이뤄져 더 이상 기생할 숙주를 찾지 못한 바이러스가 자연 소멸되도록 해야 한다. 적은 맹렬한 기세로 덮쳐 오는데 아무 대책없이 최고의 방어무기를 내려 놓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 일인가.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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