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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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대한민국

2021-07-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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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다’-. 1980년대였던가. 리영희의 저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한 때 운동권을 사로잡았던 것은.

이후 회귀성 열병마냥 한국정치의 주요 고비 때마다 좌파들에 의해 제기되어온 것이 바로 이 주제다.

대한민국은 미 점령군과 친일파가 야합해 세운 나라다. 역대 대통령을 봐도 존경할만한 대통령은 없다. 이승만은 독재를 하다가 쫓겨나 망명지에서 숨을 거두었다. 박정희는 암살됐고, 전두환, 노태우는 감옥에 갔고….


그러니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날았어야 할 나라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정통성이 없다는 것으로 한민족 역사의 정통은 북한이 이어가고 있다는 주장을 그 밑자락에 깔고 있다.

철이 지난 주장이다. 기껏해야 변방의 이론이다. 그런데 한국의 서점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책들이 널려 있다고 한다. 그리고 대선시즌을 맞아 일부 정치인들에 의해 이 주장은 또 다시 점화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정녕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인가. 세계인의 시각은 전혀 정반대다. 대한민국은 한 마디로 기적의 나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반세기 남짓 짧은 기간에 산업화에 민주화, 그리고 자체 브랜드의 문화 대국이란 3관왕을 획득한 나라로 보고 있다.

그 대한민국에 대해 헌정사를 보냈다고 할까. 그것은 유엔무역회의(UNCTAD)의 지난 주말의 표결이다. UNCTAD는 68차 무역개발이사회에서 195개국 회원국 만장일치로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한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그룹 A(아시아, 아프리카)에 속했던 한국은 그룹 B로 옮겨졌다. 그룹 B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선진국들이 들어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유일하다. UNCTAD 설립 57년 역사상 개도국에서 선진국에 편입된 것은 대한민국이 처음이다.

1950년 6.25 직후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76달러로 세계 최빈국이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2,860달러로 주요 7개국(G7) 멤버인 이탈리아(3만2,200달러)를 제쳤다.

사실 대한민국을 국제사회가 선진국으로 인정한지는 오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991년 한국을 선진국으로 지정했고 세계은행도 96년 같은 조치를 했다. 그리고 2010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선진국그룹으로 불리는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했다.


그런데다가 K 컬처로 대별되는 한류의 세계적 확산과 함께 한국은 브랜드국가로 인식되어왔다. 한국이 G7 정상회의에 연속해 초대받은 것도 이 같이 높아진 ‘대한민국의 위상’에 힘입은 것이다.

단순히 소득만 높아졌다고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오일 머니로 부유해진 중동 산유국들을 선진국으로 분류하지 않는데서 보듯이.

선진국 분류에는 국민 소득도 소득이지만 산업인구 구조비율, 교육, 문화수준, 무역수지, 기대수명지수, 언론자유지수 등을 모두 종합적으로 판단해 내려진다. 이런 면에서 유엔이 선진국 편입을 공식화한 것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일이다.

같은 타이밍에 한국에서 또 다시 촉발된 것은 역사 논쟁이다. 광복회장이란 사람이 미군은 점령군, 소련은 해방군이라고 주장하고 나선데 이어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 지사는 대한민국은 미 점령군과 친일파들이 합작해 세운 나라라는 주장을 한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면서 은연중 반미, 반일감정을 부추기고 나선 것.

그 주장이 과연 먹힐까. 낡아빠진 레코드판에서 나오는 흘러간 노래 같은 그 소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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