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먼저 생긴 정당은 연방당이다. 첫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이 만든 이 당은 강한 연방 정부를 근간으로 중앙 은행 설립, 관세를 통한 자국 산업 육성, 영국과의 관계 개선 등을 강령으로 삼고 있었다.
초기 연방 정부 지도자들은 대체로 연방당에 속해 있거나 그 정책에 동조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연방 정부를 가능케 한 연방 헌법을 만든 사람과 이것이 13개 주의 지지를 얻어 통과되도록 애쓴 사람들이 모두 연방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미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도 심정적으로는 연방주의자였지만 국민 통합을 위해 정당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부통령이었던 존 애덤스는 열렬한 연방당원이었다.
그러나 초창기 연방 정부 요직을 장악하고 정국을 주도하던 연방당은 1801년 이후 급속한 쇠락기에 접어든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방당 대통령이었던 애덤스는 이민자의 투표권을 제한하고 정부 비판을 금지하는 ‘이민자 및 반역법’을 만드는데 이는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천명한 건국 정신에 위배되는 것으로 결국 폐기됐지만 이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신망을 잃었다.
거기다 연방당의 양대 지도자인 해밀턴과 애덤스의 불화가 계속되면서 당이 쪼개졌고 1812년 영국과의 전쟁이 일어나면서 친영파였던 연방당의 입지는 좁아지다 1820년대 사실상 소멸하고 만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연방당에 대항하기 위해 토머스 제퍼슨이 만든 민주 공화당의 위세는 날로 강해졌다. 1801년 제퍼슨을 첫 대통령으로 배출한 민주 공화당은 훗날 이름이 민주당으로 바뀌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방당은 소멸했지만 그 당 세력 중 일부가 휘그당의 일원으로 창당에 참여했고 휘그당이 망한 뒤에는 공화당의 일부가 된 점을 감안하면 공화당의 뿌리도 나름 깊은 셈이다.
연방당의 대표 주자인 애덤스와 민주 공화당 창립자인 제퍼슨은 연방 정부가 세워진 후에는 정적으로 대립했지만 독립 전쟁 때는 혁명 동지였다. 애덤스는 미 양대 세력의 하나인 뉴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양심적 지식인이자 유능한 변호사였고 제퍼슨은 역시 양대 세력의 하나인 남부 버지니아의 대지주이자 과학자, 문필가, 법조인 등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이런 다른 백그라운드에도 불구,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의 능력과 인격을 존경했으며 상대방이야말로 자기를 이해해주는 드문 친구라고 믿었다.
이 두사람의 관계가 틀어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건이 프랑스 대혁명이다. 당시 프랑스 대사로 가 있던 제퍼슨은 처음부터 프랑스에 호의적이었으며 미국 독립 전쟁과 프랑스 혁명을 동일시했다. 둘 다 압제에 저항하는 민중의 분노가 터져 나온 것이고 낡은 사회를 부수고 새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소간의 희생은 불가피 하다고 봤다. 더군다나 프랑스가 미 독립 전쟁 때 물심양면으로 미국을 도운 점을 감안하면 미국도 프랑스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애덤스는 미국 혁명이 영국인들이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영국의 전통과 질서에 바탕을 둔 것과는 달리 프랑스 혁명은 아예 구체제를 때려 엎고 전혀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무모한 시도라 봤다. 더군다나 신생국으로 미약한 미국이 프랑스를 돕기 위해 세계 최강의 영국과 싸운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프랑스 혁명이 공포 정치로 전락하고 독재자 나폴레옹이 출현하면서 애덤스는 자신이 옳았음을 확인했지만 제퍼슨은 끝내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영원히 정적으로 남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제퍼슨이 대통령직을 물러난 후 수 년이 지난 1812년 애덤스가 화해의 손길을 내밀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제퍼슨은 애덤스가 신년 인사를 겸해 보낸 편지에 화답했고 그 후 14년 동안 이들은 158통의 편지를 주고 받으며 세상의 모든 문제에 관한 의견을 나누며 다시 친구로 돌아갔다. 그리고 미국 탄생 50주년이 되는 1826년 7월 4일 똑 같이 눈을 감았다. 제퍼슨은 정오쯤, 애덤스는 오후 6시 경 사망했는데 제퍼슨 사망 사실을 모르고 있던 애덤스는 “제퍼슨은 살아 있겠군”이란 말을 남겼다 한다.
성격과 배경, 정치 철학이 달랐던 두 사람이 혁명 동지였다 정적으로 변한 후 다시 화해해 친구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어느 때보다 둘로 갈라져 극심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미국인들이 두 거인의 삶과 죽음에서 교훈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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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