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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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장과 수목장

2021-07-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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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한 산악인의 장례식이 타운에서 치러졌다. 갑작스레 전해진 뜻밖의 죽음이어서 그를 떠나보내는 동료 산악회원들의 안타까움과 허망함은 더 컸다. 평소 산을 즐겨 찾던 그를 기려 가족들은 화장 후 고인의 유골은 요세미티에 뿌리기로 했다.

산 좋고 물 좋은 시에라 네바다를 오르다 보면 죽은 후 뼈가루는 깊은 숲속이나 무지개 송어가 살고 있는 맑은 계곡 물에 뿌려졌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아무 산에나 유골을 뿌리는 것은 위법이다. LA의 뒷산 격인 앤젤레스 국유림이나 주말 하이커들이 많이 찾는 마운틴 발디 등에 함부로 유골을 뿌릴 수 없다.

요세미티는 사전에 공원 당국의 허가를 받으면 가능한 곳이다. 하지만 국립공원 경계 안에 뿌릴 수 있는 장소는 도로나 등산로, 주차장 등에서 눈에 띄지 않는 곳이어야 하는 등 제약이 따른다. 요세미티에는 허가를 받아 주고, 유골 뿌리기에 적당한 곳을 안내해주는 대행업체도 있다.


사후 어떻게 시신을 처리하느냐는 갈수록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오래 된 공원 묘지를 밀어 버리고 망자를 모셨던 땅을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생활 용지로 바꾸는 나라도 있다.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의 묘지 사용기한은 15년에 불과하다. 그후에는 묻혀 있던 유해를 내보내 화장 처리하고, 새로운 망자를 받아들인다. 묘의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홍콩에서 묘지는 가장 비싼 부동산에 속한다. 심각한 묘지 부족 때문에 홍콩 당국은 유명 연예인 등을 동원해 화장 장려 캠페인을 벌인다.

지난 1970년대부터 대도시 부근의 묘자리 부족 현상이 심각해진 일본에서는 수목장이 확산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묘를 관리하고 제사를 모셔주는 사찰도 수목장 전파에 앞장서고 있다. 일본의 수목장은 화장한 유골을 땅에 묻고 그 위에 나무를 심는 경우가 많다. 망자의 유골 위에서 자라나는 나무가 표식이 돼 유족들이 추모의 시간을 갖게 된다.

LA나 오렌지카운티에서 화장을 하게 되면 유골은 주로 바다에 뿌린다. 카운티 보건국에서 발급되는 허가서가 있어야 한다. 유골은 해안에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진 바다, LA에서는 주로 샌피드로 인근에 많이 뿌린다. 유골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려면 어디든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

자연장은 미국과 한국의 개념이 좀 다르다. 미국서 자연장이라면 주로 시신을 화장하지 않은 채 분해되는 관이나 옹기, 아니면 수의로 감싼 싼 후 바로 매장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 위에 나무를 심는 게 보통이다. 말 그대로 자연으로, 한 그루 나무로 돌아가게 된다. LA 근교에는 자연장을 제공하는 유대인 묘지가 있다.

한국의 자연장은 훨씬 광범위하다. 매장과 화장 후 납골당에 유골을 모시는 이외의 장례는 모두 자연장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국의 자연장은 시신을 화장한 후 이뤄진다. 주로 분해되는 용기에 유골을 담아 나무 밑에 묻는 수목장이 대부분이다. 생전에 나무, 새, 야구 이 셋을 가장 좋아했다는 LG그룹 고 구본무 회장이 한국의 재벌 중에서는 처음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수목장의 방식은 다양하다. 한인들에게는 전복을 채취하는 곳으로 잘 알려진 샌프란시스코 북쪽, 멘도시노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20에이커 규모의 수목장 ‘베터 플레이스 포리스츠’(Better Place Forests)가 있다. 여기 수목장은 유골을 흙과 함께 채로 쳐서 나무 아래 뿌린다. 레드 우드, 더글라스 잣나무, 오크 트리 등의 나무를 유족이 사야 한다. 나무 한 그루를 사면 그 나무 아래 부부나 가족들의 유골을 모두 뿌릴 수도 있다.

토론토의 벤처 사업가가 만든 이 수목장은 산타 크루즈 인근과 워싱턴, 오리건, 콜로라도, 애리조나 주등으로 늘려 나갈 계획이다. 미국서도 수목장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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