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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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지켜봐야 한다

2021-07-01 (목)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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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은 경제에도 뜻밖의 변화를 가져 왔다. 팬데믹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 변화가 일시적인 것인지, 영구적인 것일지 판단하기 어렵다. 성급한 판단은 유보하고, 더 지켜 봐야 할 것 같다. 단순히 과거로 복귀하는 정상화가 아니라 새로운 정상, 뉴 노멀이 정착될 부분도 있을 것이다.

팬데믹 시작 무렵인 작년 3월 1.5%이던 소비자 물가지수(CPI)는 가장 최근 통계인 지난 5월 5.0%를 기록했다. 물가 상승과 인플레 우려는 팬데믹 전에는 한 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가전제품을 사러 간 한 고객에게 직원이 친절하게 조언했다. “조금 있으면 세일을 시작할 거니까 그 때 사세요”. 직원이 말한 시기에 맞춰 다시 매장을 찾았다. 세일은커녕 가격이 오히려 올랐다. “이런 일은 처음이어서 미처 예상하지 못했어요”. 오래 된 직원은 당황해 하며 사과했다.

가전만 그런게 아니다. 가구를 주문해도 몇 달 후 배달이 가능한 것도 있다. 포장용 판지가 없어서 운송이 늦어진다는 것도 있다. 세상이 코로나 때문에 난리인데 집값은 오르고, 집이 없어서 못판다는 말이 나올 줄 알았겠나. 이 때쯤이면 은행들은 연체가 쌓여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있었지만, 천만에, 밀려드는 예금이 별 반갑지 않은 은행도 있다고 한다. 정부가 돈을 너무 풀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수 백만명이 실직했는데, 수 백만 개의 일자리는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말 한 구인 사이트가 집계한 미국의 잡 오프닝은 970만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실직자 수 백만 명은 구직에 나서지 않고 있다.

진단은 다르다. 공짜 돈을 너무 주니 일하려 하지 않는다고 공화당은 말한다. 주 600달러이다가 300달러로 줄어 든 연방 실업보조금을 가리킨다. 시간당 7달러25센트인 연방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하면 풀타임으로 일해 봐야 주 290달러. 놀면서 실업수당 받는 것이 10달러라도 많으니 영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겠다.

민주당은 다른 생각이다. 아이들은 집에서 원격수업을 받고 있고 마땅한 차일드 케어는 없다. 코로나 감염도 걱정된다. 실직자도 경력이 인정되는 곳을 원한다. 전혀 다른 분야의 바닥부터 시작하려 들지 않는다. 일자리의 질이 문제라는 입장이다.

텍사스, 조지아, 플로리다 등 10개 주는 지난달 말로 연방 실업수당 지급을 끊었다. 당장 250만명이 헤택에서 제외됐다. 캘리포니아 등 다른 주들도 순차적으로 연방 보조금 지급이 중단된다. 어느 쪽 주장이, 어느 정도 맞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잠깐, 기다려 봐-”. 생계에 매달려 숨가쁘게 돌아가던 사람중에는 이마에 손을 얹고 진로를 고민하는 이들도 생겼다. 팬데믹이 계기가 됐다. 대거 일자리를 잃었던 우버 운전자도 그 중 한 그룹이다. 지금 돌아가면 당장 벌이는 전 보다 낫고, 도로 돌아오라며 회사에서 내미는 구애의 조건도 달콤하다. 그러나 우버가 안정적인 직장, 전망 있는 직장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은 구직난 속의 구인난, 구인난 속의 구직난을 겪고 있다. 현 상황이 일시적인 것인지, 임금과 근로조건에서 노동시장의 질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재택근무가 어느 정도 정착될 것인가는 중요한 관심사다. 뉴욕 시를 예로 들면 9월말까지는 62%의 직장인이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주 3일 출근하는 하이브리드 형이 보편화될 수 있다는 말도 들린다. 맨해튼의 직장인 10%만 원격근무를 해도 출근길 인파는 하루 10만명이 준다. 이들이 출근길에 집어 드는 커피와 베이글도 그만큼 줄게 된다.

LA도 다르지 않다. 기세좋게 오르던 다운타운 콘도는 찾는 이가 적어진 반면, 인랜드 등 집값이 싼 외곽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일주일에 하루 정도 오피스에 나가야 한다면 뚝 떨어진 교외도 상관이 없다. 직장인 고객이 많은 비즈니스는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 때 수 십만 달러를 호가하던 타운 비디오 대여업소들은 순식간에 사라졌었다. 전기차가 양산되면 주유소는 사양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

원격근무는 많은 회사가 시도해 볼 것이다. 팬데믹 때 재미를 봤다는 업체가 적지 않다. “안될 줄 알았는데 해 봤더니 되더라”고 한다. 오피스 빌딩의 공실율은 높아지게 됐다. 하지만 재택근무가 단순히 경비절감만이 이유라면 실패할 우려 또한 높다. 실패하는 기업의 공통점은 눈 앞의 이익만 추구한다는 것이다. 고정경비를 줄이려다 근본적인 것을 잃을 수 있다. 동기부여, 창의력, 기업 정신과 함께 직원들간의 끈끈한 팀웍과 친화력이 더 강조되어야 하는 업종도 있다.

원격근무는 온라인 유통의 확산과 함께 이번 팬데믹이 가져온 가장 눈에 띄는 변화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실험과 많은 시행 착오를 겪으면서 뉴 노멀의 하나로 자리잡을 공산이 크지만 어느 정도 수준일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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