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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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의 견공들

2021-06-29 (화)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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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대통령의 퍼스트 도그 ‘챔프’가 19일 세상을 떠났다. 이에 대통령 부부는 다음과 같은 애도 성명을 냈다. “지난 13년간 우리의 변함없고 소중한 동반자였던 챔프,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 함께 있길 원했고, 그가 옆에 있으면 모든 게 즉시 더 나아졌다. 백악관 정원에서 햇볕을 쬐고 회의에도 함께했으며 하루를 끝낼 때면 모닥불 앞 우리 발아래서 웅크리길 좋아했다. 가장 즐거운 순간과 가장 슬펐던 날에 우리와 함께하며 교감했던 다정하고 착한 소년, 우리는 그를 항상 그리워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월 백악관에 입성할 때 셰퍼드 종인 ‘챔프’와 ‘메이저’를 데리고 왔는데 이제 세 살짜리 ‘메이저’ 혼자 남게 됐다. 셸터에서 입양한 ‘메이저’는 얼마전 두 번이나 경호요원을 물어 훈련소에 다녀오는 등 사고를 치기도 했던 녀석이다.

지난달에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퍼스트 도그가 숨을 거뒀다. 포르투갈 워터도그 종인 ‘보’(Bo)는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초에 에드워드 케네디 전 상원의원 부부가 말리아와 사샤에게 선물한 반려견이다. 오바마 가족은 2013년 재선 직후 ‘보’와 같은 종의 ‘서니’를 입양해 백악관에서 함께 지냈다.


‘보’의 죽음에 대해 오바마 부부는 트위터를 통해 “우리 가족은 진정한 친구이자 충성스러운 동반자를 잃었다. ‘보’는 10년 이상 우리의 좋은 날, 나쁜 날, 모든 날에 변함없고 다정한 존재였다. 그는 백악관에서의 야단법석을 잘 참아냈고, 큰 소리로 짖었지만 물지 않았고, 여름에 수영장에 뛰어드는 것을 좋아했고, 식탁 주변에서 음식조각을 먹는 낙으로 살았고, 훌륭한 털을 갖고 있었다. 우린 그를 몹시 그리워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대통령들의 반려견 추모사를 읽다보면 가까운 ‘사람’이 죽어도 저렇게는 못하겠다 싶을 정도로 애틋하다. 위의 내용들도 훨씬 더 긴 글을 대충 요약한 것이다.

1600번지 펜실베니아 애비뉴의 백악관은 대통령 가족뿐 아니라 애완동물들이 함께 거주하는 스윗 홈이다. 반려견들은 딱딱한 정치 1번지에 인간적인 이미지를 더해주는 존재이며, 퍼스트패밀리의 가족사진에도 버젓이 등장하며 사람 못지않은 인기를 끌곤 한다.

아들 부시 대통령은 스카티시 테리어 종인 ‘바니’를 극진히 사랑해 껴안고 뽀뽀하는 사진이 자주 보도됐고,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키우던 잉글리시스프링거 스패니얼 종 ‘밀리’는 바바라 여사가 쓴 동화책의 주인공으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빌과 힐러리 클린턴 역시 소문난 동물애호가로, 백악관 시절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인 ‘버디’, 고양이 ‘삭스’와 함께 살았다. 힐러리 여사가 이들에 관해 쓴 동화책도 꽤나 인기를 끌었다.

로널드 레이건은 카발리에 킹찰스 스패니얼 종인 ‘렉스’와 목양견 ‘러키’를 키웠고, 지미 카터는 보더콜리 종 ‘그릿츠’와 샴고양이를, 제럴드 포드는 골든 리트리버 ‘리버티’를, 리처드 닉슨은 코커스패니얼 ‘체커스’를 비롯한 애완견 4마리를, 린든 B. 존슨 역시 비글 두 마리를 비롯해 여러 마리의 견공을 백악관 가족으로 삼았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엔 백악관이 거의 동물원이었다. 고양이, 토끼, 햄스터, 잉꼬와 카나리아, 애완견 10여 마리와 함께 말과 조랑말 3마리가 있었다. 어린 케네디 주니어가 조랑말과 함께 있는 사진은 아마 많은 사람이 기억할 것이다.


대통령 펫 뮤지엄(Presidential Pet Museum)은 10여 마리의 개를 키운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부터 현 46대 바이든 대통령까지 백악관 반려동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백악관을 동물원으로 만든 대통령은 케네디뿐이 아니다. 링컨 대통령은 칠면조, 염소, 조랑말, 고양이, 개, 돼지, 토끼를 길렀고,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말, 개, 돼지, 뱀, 오소리, 앵무새, 캥거루쥐와 외다리 닭을, 캘빈 쿨리지는 개 9마리와 고양이 4마리, 새 7마리, 새끼사자 2마리, 너구리, 곰, 왈라비, 영양, 그리고 13마리의 오리와 거위, 당나귀를 키웠다고 한다.

역대 45명의 미대통령 중에서 반려동물을 들이지 않은 사람은 단 4명이다. 12대 밀러드 필모어, 13대 프랭클린 피어스, 21대 체스터 아서 그리고 45대 도널드 트럼프가 그들이다.

트럼프는 140년만에 반려동물을 백악관에 데려오지 않은 첫 대통령이다. 하긴 그가 동물이나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림으로도 그려지지 않는다. 동물은커녕 사람에 대해서도 한없이 비열하고 환경문제에 무신경한 장사꾼이니 말이다. 심지어 그의 두 아들은 10년전 사파리에서 물소 등 동물들을 사냥한 후 전리품 앞에서 자랑스럽게 포즈를 취한 사진이 보도되어 동물보호운동가들의 분노를 샀었다.

많은 개와 고양이, 수십마리의 양떼를 길렀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이런 말을 남겼다. “만일 개가 당신의 얼굴을 쳐다본 후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면 집에 가서 양심을 점검해봐야 한다.”

모쪼록 혼자 남은 ‘메이저’가 바이든 가족과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백악관 시절을 행복하게 지내기 바란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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