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앨리스’(Still Alice)는 2014년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알츠하이머에 관한 영화다. 잘 나가던 언어학 교수인 앨리스 하우랜드는 불과 나이 50에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 본인도 본인이지만 가족들도 앞으로 겪게될 고난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알츠하이머는 유전적인 요인이 있기 때문에 가족력이 있으면 본인도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시간이 갈수록 앨리스의 기억은 하나씩 지워지지만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아직까지 이를 고칠 수 있는 약은 없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고통을 절절히 연기한 줄리앤 모어는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았다.
알츠하이머는 가장 잔인한 질병의 하나로 꼽힌다. 서서히 한 사람을 식물 인간으로 만들며 가족들에게 견딜 수 없는 아픔과 함께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까지 안기기 때문이다. 이 병은 지능이나 교육 수준, 돈이나 명성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 11월을 ‘알츠하이머 관심의 달’로 제정한 레이건을 비롯 영국의 대처 총리, 한 때 만인의 연인이었던 리타 헤이워스, ‘탐정 콜롬보’로 한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던 피터 포크, ‘벤 허’와 ‘십계명’의 찰튼 헤스턴, 민권 운동의 기수 로자 팍스 등이 모두 말년을 이 병으로 고생하며 보냈다.
현대인의 천형과 같은 이 병을 고치기 위해 전 세계 의학계가 수십년 동안 머리를 싸매고 치료약을 개발했으나 거의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임상 실험 단계에서 폐기된 약만 100개가 넘는다. 이처럼 신약 개발이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알츠하이머의 원인이 무엇인지조차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나이를 먹으면서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뇌 세포 사이에, 타우라는 단백질이 세포 안에 쌓이게 되는 데 이것이 결국 세포를 죽여 기억을 잃게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악성 질환과 싸우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최근 반가운 소식이 나왔다. 연방 식품의약국(FDA)이 이달 초 알츠하이머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신약 사용을 허가한 것이다. 바이오젠사가 만든 아두카누마브(상표명은 아두헬름)라는 이 약은 임상 실험 결과 아밀로이드 축적을 줄이고 인지 능력 감퇴를 늦추는 효과가 있는 것이 입증됐다.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FDA의 승인을 받은 것은 거의 20년만에 처음이다.
이 약 임상 실험에 참가한 한 80세 노인의 경우 6년전부터 기억력 감퇴를 경험했는데 5년간 이 약을 다량 복용한 후 기억력 악화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약 복용을 중단하자 기억력은 나빠졌으며 이를 다시 복용하면서 지금은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약의 효과가 완전히 검증된 것은 아니다. 외부 인사로 구성된 FDA 자문위원회는 이 약의 효과가 아직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허가에 반대했으나 FDA는 이례적으로 ‘신속 허가’를 결정했다. ‘신속 허가’란 ‘중대한 질병에 대한 치료제가 없을 때’ ‘중간 단계의 임상 실험 결과’를 가지고 일단 허가를 내주는 것이다. 훗날 치료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큰 것이 판명이 될 경우 이를 취소할 수 있다.
이 약의 비용이 연 5만 달러가 넘는 것도 골칫거리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대부분이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치료비용의 대부분을 메디케어가 부담해야 하는데 가뜩이나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이 프로그램이 전액 커버해 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자칫 가난한 환자들은 알츠하이머 진행을 늦출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그림의 떡’ 보듯 쳐다 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현재 여러 각도에서 알츠하이머 진행 속도를 늦추는 약 70여개가 임상 실험 중이다. 전문가들은 유전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신약 개발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며 이 중 몇 개, 혹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약의 하나가 알츠하이머를 고칠 수 있는 날이 올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현재 미국내에서만 600만명, 전 세계적으로는 4,000만명이 이 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 각국에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숫자는 급속히 늘 것이 뻔하다. 하루 속히 감기약 먹듯 간단히 치매의 진전을 막고, 나아가 돌이킬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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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