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나도 당신 같았다” - 샌프란시스코의 한 노숙자가 들고 있는 팻말이다.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살아도 사람의 삶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 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곳으로 샌프란시스코가 종종 꼽힌다. 고층빌딩들로 번쩍이는 다운타운은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의 거리이자 집 없는 노숙자들의 영역이기도 하다. 잘 차려입은 행인들 오가는 사이로 길바닥에 누워있는 노숙자들, 얼기설기 이어 맞춘 텐트들, 쓰레기와 오물 그리고 냄새 … 소득 최상위 계층과 최하위계층이 한곳에 모이면서 빈과 부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뉴욕, LA 등 미국 대도시 어디를 가든 비슷한 거리풍경이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홈리스 문제가 극에 달했다. 프리웨이 양편 언덕, 고가도로 아래, 동네 공원, 후미진 도로변… 눈길 가는 곳마다 노숙자 텐트들이 우후죽순 들어서있다. 캘리포니아는 노숙인구가 16만명으로 전국 최다. 따뜻한 남가주에 주로 몰려있어서 LA 카운티에 대략 6만6,500명(2020년 1월 기준), LA 시에만 4만1,300명이 거리 생활을 하고 있다.
잘 사는 미국에 왜 이렇게 노숙자가 많은 걸까. 과거에도 노숙자가 없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거리마다 노숙자들이 터를 잡은 것은 10년 쯤 전부터인 것 같다. 노숙자 보호단체들에 의하면 노숙인구는 2011년 정점을 찍은 후 주춤했다가 2016년부터 매년 10여 %씩 늘고 있다.
‘홈리스 ~’ 하면 보통 정신질환이나 마약중독을 떠올린다. 최근 LA 카운티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를 꼽은 응답자가 44%에 달했다. 반면 홈리스 문제 전문가들의 진단은 다르다. 서민들이 감당할만한 저가 주택 부족이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LA 한인타운의 1베드룸 아파트 렌트비는 기본이 1,500달러다. 시간당 15달러로 한 달 일하면 세금 빼고 손에 들어오는 것이 2,000달러 좀 넘는다. 렌트비 내고 먹을거리 장보고 전기세 수도료 전화비 … 내려면 빡빡한 액수다. 형편이 좀 나은 중산층이라 해도 저축할 여유 없이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6개월 생활비를 저축해두라”는 재정전문가들의 조언은 현실에서 멀다.
이렇게 빠듯한 삶을 살다가 덜컥 실직을 하면 몇 달을 버틸 수 있을까. 가족친지 친구들 신세 지다 결국은 거리로 나앉는 것이 수순이다. ‘나도 당신 같았다’는 노숙자의 푸념은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일로 닥칠 수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에 노숙자는 거의 없었다. 서민아파트가 충분히 공급되어서 저소득 가구들이 입주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80년대가 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연방정부가 저소득층 아파트 지원예산을 대폭 깎아버렸다. 아울러 가주는 세금을 줄이는 대신 사회복지 프로그램들을 대거 없앴다. 주정부 운영 정신병원들이 문을 닫으면서 수천의 정신질환자들이 방치되었다. 노숙자 양산의 문이 열린 것이다.
보다 큰 문제는 천정부지 주거비용. 봉급은 제자리걸음인데 집값/아파트 렌트비는 자고 새면 펑펑 뛰니, 수입과 집세의 불균형 사이로 노숙의 위험이 끼어들었다. 부동산업체 질로우 조사에 의하면 서민들이 보통 소득의 1/3을 렌트비로 쓰는 시점부터 그 도시의 노숙자는 증가한다. 렌트비가 올라서 소득상위 주민들이 중간소득 주민들이 살던 아파트로 옮기고, 중간 계층은 저소득층이 살던 아파트로 가면서 저소득 주민들은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UCLA 연구에 따르면 LA 카운티에서 렌트비가 5% 오를 때마다 대략 2,000명이 거처를 잃었다.
팬데믹이 몰고 온 실업, 파산, 수입 감소 등 경제 한파로 렌트비 밀린 세입자가 전국에 1,000만명이라고 한다. 그동안은 연방 강제퇴거 금지조치로 버텼지만 시효가 오는 30일로 만료되니 이들의 가슴은 타들어간다. LA 카운티는 이를 3개월 연장했지만 그 역시 임시대책일 뿐이다.
홈리스 대란을 손보겠다며 개빈 뉴섬 가주지사가 120억달러 예산의 야심찬 프로젝트를 지난달 공개했다. 팬데믹 기간 모텔 등을 노숙자 주거시설로 전환했던 프로그램을 확대해 6만 5,000명에게 주거공간을 제공하고, 4만 6,000유닛을 신축하며, 렌트비를 지원해 가족단위 노숙을 줄이겠다는 플랜이다.
병행되어야 할 것은 신규건축이다. 만성적 주택난을 해소하지 않고는 노숙자 주거시설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의 2016년 발표에 의하면 가주는 주택난 해소를 위해 적어도 연간 18만 유닛의 신규주택/아파트를 지어야 한다. 현실은 10만 유닛을 겨우 짓고 있을 뿐이다. 고층아파트/콘도를 건축하려고 하면 집값 떨어진다고 주민들이 반대하고, 기존 세입자들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자신들이 밀려날까 우려하고, 관료주의 행정과 규정들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서 개발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거리의 사람들은 늘어난다.
“자고 새면/ 이변을 꿈꾸면서/ 나는 어느 날이나/ 무사하기를 바랐다…”(임화, ‘자고 새면’)는 시가 있다. 거리의 노숙자들이, 거리로 밀려나기 직전인 주민들이 무사하기를 바란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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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