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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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집에 가지 못한 이들

2021-06-18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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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이 되면 6.25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마치 지난 1년간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잊고 있다가 이맘때가 되면 6.25에 사라진 사람들, 잊혀진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전쟁에의 상흔이 터져 나오곤 한다.

지난 5월15일은 21세 랄프 바우먼의 유해가 70년 전 떠나온 고향 땅 유니언에 묻힌 날이었다. 미국은 1996년부터 한국전 참전용사 유해 발굴작업을 시작했으며 이후 10년간 220여구를 수습했다.

이후 2005년 조지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 발굴작업이 중단됐다가 2018년부터 북미정상회담회의에서 유해발굴 작업 재개 합의가 시행되었다.


랄프 바우먼의 유해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한달여 후인 7월27일 북한이 55개 상자에 담아 미국에 송환된 한국전 미군 전사자 유해에 포함되어 있었다. 하와이 오하우섬 해군·공군 합동기지실험실의 신원확인작업을 거쳐 이번에 가족에게 인계된 것이다.

바우먼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소도시 유니언 출신으로 한국전에 파병, 장진호 전투에 투입됐다가 1950년 12월2일 실종됐다고 한다.

한국전 당시 가장 참혹했던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26일부터 12월13일까지 함경남도 개마고원 장진호 계곡에서 미군과 중공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다. 미 해병 1만5,000명이 12만명 규모의 중공군에 포위돼 17일간 혹한 속에서 치열하게 싸워 가까스로 철수했다. 규모 열배의 중공군을 뚫고 흥남 철수작전에 기여한 장진호 전투는 미국 할리웃에서 전쟁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덜 참혹한 전장이 어디 있으랴. 단 하나의 목숨을 담보로 걸고 사력을 다해 싸우는 곳,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겨우 21년을 살다가 그 나이보다 3배 이상의 세월을 지나서 태어난 고향으로 가 영면한 랄프 바우먼의 사연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개마고원은 함경남도 북부지역에 넓게 분포된 ‘한반도의 지붕’으로 겨울 추위는 혹독했다. 6.25 당시 병사들은 동상과 질병이 속출했고 자동차 배터리가 얼어터지고 총기에 바르는 윤활유가 얼 정도로 미 해병대 1개 사단이 전몰당할 뻔한 이유가 바로 추위였다. 갓 20대에 접어든 미군 청년은 얼마나 춥고 겁나고 공포스러웠을까.

미주한인들은 워싱턴 DC를 방문 하면 대부분 내셔널 몰에 자리한 한국전쟁 기념공원을 가본다, 판초 우의를 입고 정찰하는 미군들의 조각상을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지난 5월에는 한국전쟁 기념공원에서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 착공식이 있었다. 여기 새겨질 3만6,574명 미군과 한국군 카투사 전사자 7,000여명 등 4만 명이상의 이름, 그리고 3년1개월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한국군은 40만 명이상이 전사했다. 도대체 누가 이 수많은 이들의 생떼 같은 목숨을 앗아갔을까?


그동안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는 많이 나왔지만 오랜만에 나온 영화로 2019년 곽경택·김태훈 감독 공동연출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이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1950년 9월15일 펼쳐진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으로 진행된 실제의 영덕 장사리 상륙작전을 다루었다. 700명의 평균 나이 17세 학도병들의 훈련기간은 단 2주, 총 쏘는 것이 서툴고 전투 경험도 없는 이들이 무모한 작전에 투입되었다.

적에게 필사적인 저항을 하며 그들은 짧은 대화를 나눈다. “우리, 집에 갈 수 있겠어?”, “갈 수 있어. ” 같이 집에 가자고 했지만, 결혼하고 아이 낳고 미국에서 살아보고도 싶었던 그들은 집으로 갈 수 없었다.

우리는 이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매일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미국에도 살고 있다. 장진호 전투나 장사리 전투 등 전장에서 삶과 젊음을 바친 이들을 떠올리는 6.25 71주년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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