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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차례의 지정학적 대지진이…

2021-06-14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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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6월 4일 새벽. 마오쩌둥의 거대한 초상화가 내려다보고 있는 톈안먼 광장. 민주화 요구 시위를 벌여온 학생들의 숙영지로 변해 있는 그 광장으로 30여대의 탱크들이 몰려왔다.

탱크들은 잠시 머뭇하는 것 같더니 바로 광장에 진입해 학생들의 숙영지를 밀고 들어갔다. 새벽 4시. 광장의 불빛이 꺼졌다. 동시에 총성이 베이징의 새벽하늘을 뒤흔들었다. 순간 톈안먼 광장은 피의 아수라장으로 변모했다. 이렇게 펼쳐진 대학살 상황은 7시간 뒤 종료됐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됐나. 이후 매년 6월 4일이 오면 던져지는 질문이다. 톈안먼 민주화시위 32주년을 맞는 올해에도 같은 질문이 던져졌다.


베이징 당국은 처음에는 사상자가 전혀 없다고 잡아뗐었다. 그러다가 1991년에야 공식 사망자를 245명으로 밝혔다. 폭도에 희생된 수 십 명의 보안요원들을 합쳐서. 3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같은 입장이다. 톈안먼 사태 사망자수는 200여명에 불과하다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나. 최소한 1만 명에 이른다는 것이 영국의 BBC방송 보도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베이징이 발표한 희생자 수의 20배가 넘는다는 추산을 하고 있다.

뭔가 대사건이 발생했다. 엄청난 인명피해가 따르는. 한 마디로 안 좋은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면 무조건 은폐에, 때로는 사건말살까지 하려든다.

50년대 대약진운동 때 희생된 사람은 최소 3,000만이 넘는다. 공산당국은 그 사태에 대해 아직도 침묵하고 있다. 2011년 중국이 자랑하던 고속열차가 충돌사고를 냈다. 베이징은 말 그대로 열차의 잔해를 땅에 묻음으로써 사건자체를 말살하려 들었다.

저항 끝에 분신자살을 마다하지 않는다. 티베트에서 들려오는 소식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외부인은 알 수 없다. 인종청소라는 반 인륜 범죄가 자행되고 있는 신장성 위구르 자치구의 상황도 그렇다. 베이징은 숨기고 또 숨기고 있는 것이다.

4,500여명. 2019년 연말 중국 우한에서 바이러스성 괴질이 발생했다. 그 괴질은 공산당 영도 하에 발생 4개월 만에 잡혔다. 이 같은 승전보고와 함께 베이징이 밝힌 공식적 사망수자다. 그러면서 우한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그 진상은 숨기고 또 숨겨왔다.

중국 공산당의 철저한 은폐. 그 피해는 그러나 종전과는 달리 중국 국내로 국한되지 않았다.


우한을 진원지로 한 코로나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번져 400만에 가까운 인명이 희생됐다. 실제 사망자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아 1,000만이 넘었을 수도 있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거기다가 경제적 피해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분노가 폭발했다. 은폐로 일관한 시진핑 중국체제에 대해. 그러나 우한 발 코비드 팬데믹을 국제사회는 체념상태에서 받아들였다. 인간이 자연의 생태계를 파괴한 대가, 다시 말해 자연훼손이라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천재(天災)로 이 대재앙을 받아들였다고 할까.

베이징은 또 숨기려 들고 있다. 참담한 팬데믹의 또 한 차례 내습은 막아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기원 규명이 그 선결과제다. 이 같은 주장을 편 호주에 베이징은 저주를 퍼부으며 전방위적 경제제재를 가했다.

뭔가를 숨기려고 허둥대다 못해 독을 품어내고 있는 중국. 이와 함께 코비드 팬데믹은 어쩌면 인류사상 최대의 인재(人災)일 수도 있다는 지적에 점차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다른 말이 아니다. 무언가를 숨기고 또 숨기고 있는 중국 공산당 체재. 그 체재는 세계적인 대재앙을 불러온 뭔가를 저질렀고 이를 은폐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COVID-19은 박쥐가 보유한 바이러스에 새로운 스파이크를 심는 기능강화(Gain of Function)방식으로 만들어진 인간에 치명적인 바이러스 변종으로 그 기원은 중국의 우한 바이러스연구소로 유력시 되면서다.

아직까지는 가설이다. 그러나 거의 정설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당초 박쥐에서 시작돼 인간에서 인간에게 감염됐다는 중국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던 세계보건기구(WHO)까지 입장을 바꾸며 ‘실험실 유출’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정황에서.

왜 인간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만들어냈나. 생물전을 위해서인가. 그 진상은 여전히 알 수 없다. 베이징이 숨기고 있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는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우한실험실 유출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면서 또 한 차례의 지정학적 대지진이 도래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예상되는 우선의 시나리오의 하나는 미국과 중국관계의 전면 재조정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파국사태까지 가는 것을 막으려 들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민심이 폭발해 배상소송이 봇물을 이루면서 해외의 중국자산 압류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 와중에서 미국의 국방예산 증강은 불가피하게 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오만하기 짝이 없는 전랑외교로 그러지 않아도 코너로 몰렸다. 그 시진핑의 중국은 초조감의 발로로 정면으로 위기돌파에 나설 수도 있다. 외부에서의 불장난을 통해. 이 정황에서 중국의 미국에 대한 투자는 중단되고 중국 유학생도 모두 철수하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영국도 중국과의 관계 전면 재조정에 나선다. 일본, 호주, 인도 등 아시아의 맹방들도 미국의 선례를 따라 같은 조치를 취한다.

한국은 그러면. 현재로서는 어떤 노선을 취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리얼 클리어 폴리틱스의 진단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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