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을 겨냥한 ‘묻지 마’ 범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 3월 코비드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급증한 아시안 대상 혐오범죄가 지금껏 수그러들지를 않고 있다. 미 전국 아시안 커뮤니티들이 단합해서 혐오범죄 근절 촉구 시위를 하고, 연방 및 지방정부들이 강력 대처방안들을 내놓았지만 아직은 별무 효과. 툭하면 아시안들이 공격을 당하니 “불안해서 밖에 나가겠나”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지난 2일 밤 볼티모어에서는 리커스토어를 운영하는 중년의 한인자매가 공격을 당했다. 밤 11가 다 되어 가게 문을 닫으려는 데 웬 남성이 시멘트 벽돌을 들고 와 자매 중 한 사람의 머리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이에 자매가 함께 저항하자 남성은 두 여성의 머리채를 잡고 밖으로 끌고 나와 다시 여러 차례 벽돌로 마구 때렸다.
20년 이상 리커스토어를 운영하며 열심히 살아온 자매에게 봉변도 이런 봉변이 없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벽돌을 휘두르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런가 하면 지난 4일 샌프란시스코 도심 한가운데서는 아시안 할머니 두 명이 동시에 공격을 당했다. 50대 남성이 군용 칼로 보이는 흉기를 들고 나타나 할머니들을 마구 찔렀다.
65살과 85살의 두 할머니는 오후 5시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백주대로에서, 갱단원도 아닌 할머니들이 흉기로 공격당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단지 얼굴만 보고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폭언하고 폭행하는 사건들, 바로 인종혐오 범죄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용의자들은 비겁하게도 나이 들고 힘없는 여성들을 골라서 공격하니, 한인가정마다 성인자녀들의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혼자 나가지 마세요” “옷차림 눈에 띄게 하지마세요” “산보할 때도 주변을 잘 살피세요” 등 어머니 걱정들이다.
얼굴만 보고, 피부색만 보고 누군가를 차별대우 하는 것이 인종주의다. 키가 큰 사람 작은 사람, 피부가 하얀 사람 검은 사람, 뚱뚱한 사람 마른 사람… 다양한 모습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인류를 이루는데, 서구인들이 ‘인종’이라는 구분을 만들어낸 것이 엄청난 비극의 원천이 되었다. 노예로 수백년 살아야 했던 아프리카인들의 비극이 가장 크고, 미국에 살고 있는 아시안들이 과거 린치당하고 차별받고 지금 혐오범죄로 고통 받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피부색을 구분해 차별적 표현을 한 최초의 인물로는 1450년대 포르투갈의 작가 고메스 데 주라라가 꼽힌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인들을 납치해 노예로 삼은 유럽 최초의 국가였다. 포르투갈 왕은 노예무역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라라에게 책을 쓰도록 했고, 그는 흑백 피부색을 대비하며 아프리카인 전체를 하나로 뭉뚱그려 열등한 야만집단으로 그려냈다.
호모사피엔스 밑에 인종 하위그룹을 고안한 것은 18세기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였다. 그는 식물분류 시스템을 인간에 적용해 유럽인(백색), 아메리카인(홍색), 아시아인(황갈색), 아프리카인(흑색)의 4개 그룹으로 나누었다. 이것이 훗날 차별적 ‘인종’이 만들어지는데 기여했지만, 사실 린네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분류작업 후 그는 말했다.
“성경에 쓰여 있듯이 신은 한 남자를 창조했고 인간은 그 후손들이다. 하지만 아주 미미한 차이로 나눌 경우 인간은 쉽게 수천 종으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흰색 빨간색 검은색 회색의 머리카락을 근거로, 혹은 하얀색 불그레한 색 황갈색 검은색 얼굴, 거인 난쟁이, 뚱보 빼빼 등등을 기준으로. 하지만 제정신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그런 사소한 것으로 다른 종이라 하겠는가.”
얼굴 생김, 피부색 같은 사소한 것으로 사람을 나누고 차별하는 일은 이제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