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지인을 오랜만에 만나 함께 식사 했다. 지긋한 연세에 아직도 현직에서 적당한 시간 환자를 상담하며 지낸다. 일 끝나면 공원 산책하며 사진도 찍고 한가하게 보낸다는 얘기 끝에 ‘이젠 쓸모없는 사람’이 됐다며 웃는다.
왜 그런지 궁금했다. 옛날엔 나이 들면 자식들이나 젊은이들에게 뭔가 어른으로서의 할 일이 있었다. 인생길의 안내나 충고도 하며 보탬을 주는 게 예삿일이었다. 어른 역할을 요즈음엔 구글이 하고 있다. 무엇이든 스마트폰 안에 다 들어있다. 스마트폰 안의 정보가 어른이다. 그들 인생에 아무 도움 없는 사람이 됐다.
동석했던 동향분과 고향 얘기며 서로 알았고 지금은 흩어진 이들과의 지냈던 얘기가 오가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스름한 차 안에서 ‘인간의 쓸모 있음과 없음’을 생각하게 했다.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쓰여질 수 있음은 보람이고 기쁨의 결과가 있다.
그러다 쓸모 있음의 상황이 엉뚱하게 확대되었다. 의사에겐 아픈 사람이, 경찰에겐 범법자들이, 사깃군에겐 어리숙한 이가, 자비심은 측은한 이가 필요한 쓸모 있는 것 아닌가? 쓸모 있음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네 하며 웃음이나왔다.
‘이제 스스로에게만 쓸모 있으면 됩니다. 여러모로 쓸모 있기 위해 달려온 생이었다면 이제 나이 들어 쓸모없고 할 일이 없다는 것. 젊어서 자신을 돌아보며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제 천천히 가시면 됩니다. 바쁠 것도 서두를 것도 없습니다. 한가한 시간을 지닌 쓸모없다고 자인한 삶만큼 풍족한 삶은 없습니다. ‘
스스로 ‘쓸모 없다’ 한 분께 드리는 독백을 하고 있다.
자녀들이 ‘가게 처분하고 편하게 사시라’고 애걸을 해도 일하는 게 즐겁고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아 일하던 분. 연세가 들었어도 발랄함과 유머가 풍부해 항상 주위에 웃음이 넘치던 그녀. 늘 일을 해야 한다던 그녀에게 COVID19은 몇 개월간 가게 문을 닫게 했고 그녀를 멈추게 했다.
가게를 팔아야 했다. 자신은 죽기 전에 깨치고 싶다며 수행하는 것에 관심 두던 그녀가 진지하게 물었다. 자신은 죽음을 준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숨들이 쉬었다 내쉬지 않으면 죽는 건데 한순간인데 죽는 걸 뭘 준비해요? 무슨 선사 흉내 내며 장난스레 하는 답을 정색하고 받아들인다.
‘그래 그렇구나 그래도 난 준비하고 싶어’ 라며 심각해 한다. 죽는 것 두렵지 않는데 그래도 어떻게 죽어야 하는 것. 어디로 가야 하는 것. 깨치고 싶다는 그녀. 그때부터 나보다 많은 나이임에도 그녀를 아우라 부르고 그녀는 나를 스승이라 칭하며 많은 우스운 선문답 같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창밖의 나뭇잎과 얘기 나누고 노래하는 새와 동무 하고 하늘 구름의 아름다움에 감탄 하는 그녀.삶을 시처럼 사는 그녀를 나는’ 시인’이라 불렀다.
언젠가 관에 들어갈 때 입을 값진 예쁜 옷을 사놓고 마음이 설레고 좋았다는 그녀. 진정 내가 누군지 깨치고 싶다는 그녀는 이미 깨친 마음으로 이생의 삶에서 저 생으로 가는 준비 확실하게 한 것같다.
이제 하루도 빠지지 않고 2시간씩 걷기 운동하는 그녀. 날마다 가게 나가던 시절처럼 한가한 시간을 밝고 활기 있게 잘 활용하고 있다. “쓸모없다는 사람, 죽음을 준비하고싶다는 당신들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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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원/뉴욕불교방송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