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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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교과서, 유태인

2021-04-21 (수) 이영묵 문인/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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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라고 불리는 20대 후반의 한국계 미국인을 잠깐 소개한다. J는 간단한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아이로 자기가 한국계 미국인이란 그 사실 자체를 무심하게 지내다가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기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소 혼란스럽고 불만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자기 옆자리에는 언제나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한국에서 온 학생을 앉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학생이 영어 몇 마디를 할 때쯤이면 그 학생은 미국 학생 가운데 앉도록 배치하고 또 다시 자기 옆에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한국 학생을 앉혔다.
그래서 J가 자기가 다른 학생처럼 친구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갖지 못한다고 하는 불만을 자기 어머니에게 하자 J 어머니가 그 말을 듣고 담임 선생에게 자기 아들도 정상적으로 친구와 사귈 수 있게 해달라고 몇 마디 했더니 선생의 대답이 이랬다.

그러한 한국 학생들의 부모들은 대면이나 전화로의 대화가 아니라 이메일 문자로 귀찮을 정도로 좌석 배치부터 학습 지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요구 사항들을 보내기만 하는데 자기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또 시도 때도 없이 선물은 물론 때로는 오해를 받을 만큼 돈 봉투까지 보낸다면서 고개를 흔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J는 부모를 따라 다니던 교회를 그만 두었다. 바로 자기 책상 옆에 앉았던 그런 아이들이 교회 아동들의 모임에서 너무 설치고 무례하고 한국말을 못한다고 자기를 놀리기까지 하는데 그만 정이 떨어졌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초등학교를 보내고 J는 중, 고등학교를 갔다. 그곳에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한국 학생은 없었다. J는 학교생활을 즐겼다. 공부도 그런대로 상위권이었다. 그리고 여름에는 요트 팀(Yacht team)에 들어가서 팀 리더로 활약했고 겨울에는 스키 팀에서도 활약했다. 그리고 특히 학교에서 비보이 댄싱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기 어머니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교회의 누구 아들은 하버드대에 들어갔다, 누구는 MIT에 들어갔다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J는 자기는 그러한 한국 학생이 아니고 미국인이라면서 그런대로 학창시절을 즐겼고 비록 하버드나 MIT는 못 갔지만 그런대로 좋은 대학에 입학,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뉴욕에 있는 직장에 다니게 됐다.
그러한 그에게 요즈음 혼란이 시작되었다. 자기는 건강한 미국사회의 일원이며 미국을 자기 조국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아시아인이라는 이방인이며 더군다나 증오의 대상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이러한 J 같은 청년들에게 이곳 미국에 이민을 온 나 같은 이민 1세대가 이제 그들에게 마음의 혼돈이나 상처에서 벗어나 내일을 위하여 현재의 상태를 설명이랄까 용기를 줄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다. 우리에게 교과서가 있다. 유태인이다. 그리고 오늘까지의 그들의 족적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먼저 그들의 1세대가 이곳에 왔을 때에 이러한 표지를 볼 수 있었다고 이야기 해 주어야 한다. ‘개와 유태인 출입금지.’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멸시까지 받으면서 험한 일, 힘든 일을 해 가면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또 자식들의 교육과 사회 진출에 온갖 노력을 집중해 왔다. 그 결과 소위 1.5세대로 태어난 사람들부터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여 의사, 변호사, 금융인 같은 전문직 그리고 언론에도 진출했다. 그리고 그렇게 오늘날까지 사회 지도급의 중추적인 역할을 이어 오고 있다는 이야기 하면서 말이다.

이어서 아주 중요한 이야기로 우리의 현재의 처지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J가 학창시절의 보아왔던 남을 배려하지 않는듯하고 또 극성스럽게 보였고 일류 대학 입학 등으로 자기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던 그 학부모들이 바로 우리의 1.5세대들이고 이제 그들 자신도 유태인 1.5세대와 같이 의사, 변호사, 대학교수, 상공인, 전문직 직업인, 금융인 그리고 정치인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 주류사회에 진출하고 있다.

그러니 1.5세대가 아니고 이미 2세대 3세대의 너희들이 지금 받고 있는 아시안이란 질시와 미움을 극복하고 유태인처럼 너희도 아시아인이란 숙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유태인처럼 사회를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집단으로 지속하고 커야 한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첫 이민 온 나 같은 1세대는 어쩌면 첫 유태 이민자들처럼 멸시를 받았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J 너희들은 주위에서 멸시를 받는 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사회적 성공을 위하여 매진하는 너희들 모습에 경쟁자로서 그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그리고 너희들의 성공적 진출에 질시와 질투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자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현재 유태인의 위치가 어떠한지 살피고 배우고 따라가며 그래서 미국 사회의 중추가 되도록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거듭 이야기한다. 이제 너희는 멸시의 대상이 아니라 시기, 질투, 질시의 대상이다. 그러니 자만해서는 안되지만 프라이드를 가져라. 그리고 의연해라.

<이영묵 문인/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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