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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콜 클래식] 꿈의 공연장

2021-04-16 (금)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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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의 장기화로 공연장 주변이 썰렁하기 이를데 없다. 예전 같으면 지역마다 발레, 심포니, 뮤지컬 등 각종 공연이 한창이었을테지만 지금은 굳게 문을 내린 채 팬데믹이 지나가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백신을 투여한 사람들의 수가 늘어가면서 캘리포니아는 6월 경에 거리두기 해제 등을 실시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지만, 변종 바이러스의 창궐 등 변수가 많기 때문에 아직은 누구도 속단하기 이른 형편이다. 인터넷 등을 통한 스트리밍 공연들도 이어지고 있지만, 관객없는 공연을 보는 것 만큼 연주하는 사람이나 이를 지켜보는 사람이나 서먹하기 이를 데 없는 것도 없다.

현장 공연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TV 등으로 보는 간접 공연을 기피하게 되는데, 이는 공연의 질 때문보다는 몰입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꼭 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공연을 봐야만 공연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면서 현장 공연을 찾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공연이 주는 감동 차이는 작품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현장 공연이 아니고서는 결코 감동이 따라오지 않는 공연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베르디의 ‘아이다’를 TV로 보는 것과 현장에서 보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바그너의 ‘링 사이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등도 살아 생전 꼭 한번은 봐야할 공연으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현장 공연이란 공연장의 시설과 음향이 좋을수록, 그것도 어느 정도 좋은 자리에서 감상해야 효과가 있으며 그때 느끼는 감동은 가히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세계의 유명 도시들은 나름대로 그 도시를 상징하는 훌륭한 공연장들이 있기 마련이다. 시드니 오페라, 뉴욕 메트로 폴리탄, 밀라노의 라 스칼라 오페라 그리고 베를린 필 홀, 뉴욕의 카네기 홀, 보스턴 심포니 홀 등은 오케스트라나 실내악을 위한 명연주회장들이다. 세계의 유명 도시들이 좋은 공연장을 소유하려 애 쓰고 있는 것은 결코 도시의 경관이나 관광객, 혹은 수준을 뽐내기 위해서만은 결코 아니다. 공연장의 수준은 곧 그 도시의 문화 수준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도시일수록 꿈의 공연장을 건립하려는 것을 오만이나 과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베이지역은 서부의 카네기 홀이라고 하는 헙스트 극장과 3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워 메모리얼 오페라 하우스라는 훌륭한 공연장을 갖추고 있다. 특히 SF 워 메모리얼 오페라 하우스는 건축미와 크기, 어카우스틱(음향) 등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쳐지지 않는 명공연장으로서 베이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좋은 시설과 건축미, 음향 등이 어우러진 세계 톱 공연장 10개를 꼽으라면 다음과 같다. (순위와 관계없이) (1) 뉴욕 카네기 홀 (2) 빈 오페라 극장 (3) 베를린 필하모니 홀 (4)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5) LA 월트 디즈니 홀 (6) 런던 로얄 알버트 홀 (7)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 홀 (8) 보스톤 심포니 홀 (9) 도쿄 산토리 홀 (10) 라히프치 게반 하우스 홀 등. 이외에도 관객 5천4백명을 수용한다는 베이징 국가 대극원, 뮌헨의 자랑 ‘뮌헨 가스타익’ 등이 있지만 베이징 등은 너무 커서 음향의 배려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어떨까? 서울에는 세종문화회관을 비롯 국립극장, KBS 홀, 예술의 전당 등이 있지만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장을 소유한 도시라고는 보기 힘들다. LA만 해도 얼마 전까지는 서울과 비슷했지만 2003년 2억 6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디즈니 홀을 완성, 이제는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랜드마크 공연장을 소유한 도시가 됐다. 사실 서울도 오세훈 서울 시장이 2011년에 사퇴만 하지 않았어도 한강 노들섬 위에 8층 규모의 초 현대식 오페라 하우스가 들어설 판이었다. 지난번 서울시 보궐 선거에서 재 당선된 바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알려져 있다시피 ‘디자인 서울’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서울시의 각종 건축물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 인물이었다. 대표적인 건물로서 노들섬 오페라 하우스와 동대문 디자인 프라자(DDP) 등이 있는데 오페라 하우스는 물 건너 갔지만 동대문 디자인 프라자 역시 자칫 서울시를 대표하는 꿈의 공연장으로 거듭날 뻔한 건축물이었다. 물론 이 곳에서는 오페라 공연보다는 쇼핑 시설을 겸한 전시장, 패션쇼 등이 열리고 있지만 지리적인 측면이나 규모, 건축미 등에서 세계적인 공연장이 될 수도 있었다. 동대문 디자인 프라자는 영국의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는데 5천억원이라는 예산이 들어간 건물이다. 3차원적 비정형 형태의 건물로서 2014년에 완공됐는데, 초기에는 ‘오세훈의 최대 실패작’이라는 혹평도 들었지만 이제는 서울시를 대표하는 건물로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비정형 건물로서는 세계 최대의 크기라고 하며, 2015년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꼭 가봐야할 명소 52’에 선정되기도 했던 곳이다. 노들섬 오페라 하우스의 건립 불발로 서울시도 언젠가는 동대문 디자인 프라자, 디즈니 홀 등에 필적하는 오페라 하우스의 건립을 재 추진하겠지만 베이징처럼 허울 좋은 건물보다는 이를 뒷받침할 문화 인구 저변 확대가 우선인 것도 분명할 것이다. 아무튼 올해가 가기 전에 전세계의 수많은 꿈의 공연장에서 아름다운 음악들이 자유롭게 울려퍼지길 바라는 마음, 누구나 한결같을 것이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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