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세상만사-창문을 열자

2021-04-13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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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는 창문을 닫고 사는 것이 보편화되었다고 한다. 미세먼지 때문이다. 뉴스 화면에 나오는 서울의 하늘은 전체가 뿌옇게 흐려서 어떻게 저 속에서 살 수 있을까 하고 보기만 해도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런데도 봄의 기운을 마시기 위하여 서울 사람들은 창문을 연다. 여의도 벚꽃 놀이도 개장하였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아직 위험 시기라고 하지만 봄의 기운을 막을 수는 없다.

어쩐지 봄에는 기운이 난다. 어디서 이런 기운이 솟을까? 볼티모어의 정신의학자 알란 펙(Allan Peck) 박사는 햇빛의 영향이라고 설명한다. 햇빛이 눈의 각막을 자극하고 식욕과 성욕 등을 발동시키는 하이포 탈라므스(Hypo Thalamus)에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라는 어려운 설명을 하는데 과학적인 설명이야 어쨌든 봄은 시람을 들뜨게 하고 바깥으로 나가게 하고 활동적으로 만든다.


각 나라의 노동운동도 활기를 띠는 것이 봄이다. 소위 춘투(春鬪)의 계절이다. 요즘 동양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것 역시 봄과 무관하지는 않다. 원래 미국의 인종 차별은 흑인에 대한 것이었다. 미국의 흑인은 1600년 대부터 1800년대 중엽까지 무려 250년간이란 긴 세월에 걸쳐 인간 이하의 차별시대(Segregation Age)를 살았다.

소위 노예시대이다. 그들 흑인들에게 자유의 세월이란 극히 짧은 세월이었다. 흑인들은 노동력을 착취 당하고, 매맞고, 죽임을 당하며 살아왔다. 한국인이 일본 제국주의의 압박과 착취를 말하지만 흑인이 겪은 수난에 비하면 그 세월이나 깊이에 있어서 비교가 안될 정도이다.

뉴저지 주 파라무스 병원에 조이스 애킨스란 흑인 여성 환자가 있다. 그녀는 20년 전 교통사고로 전신 마비가 되어 팔 다리를 못 쓴다. 그러나 미술에 소질이 있어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린다.

주로 세계 명화 특히 밴 고흐의 그림을 옮긴다. 이것을 연말에 팔아서 특히 백인 환자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는 것이 그녀의 기쁨이며 보람이라고 한다. 차별 받은 흑인의 한을 사랑으로 갚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지금은 섞여 사는 시대이다. 인종으로 나누고 지식의 정도로 나누고, 경제력으로 나누고, 문화의 차이로 나누는 시대가 아니다. 민주주의란 공존공유(共存共有)의 사상이다. 함께 잘 되자는 것이 인류의 이상이다.

그런 점에서 기업주와 노동자가 함께 잘 되어야 한다. 세계적인 명절이 5월 1일, 노동절(May Day)이다. 노동자의 수고를 알아주고 감사하자는 날이다. 노동자는 부려먹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함께 싸우는 동지이다.

노동자들이 깃발을 드는 험한 날이 아니라 가장으로서의 노동자들이 기족과 함께 봄나들이를 하는 즐거운 날이다. 한국에서도 노동자를 ‘일꾼’이라 불러 낮은 계층으로 다룬 것은 봉건사상이 지배하던 옛 이야기이다.


미국의 서부활극이란 백인들이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인간 이하로 알아 마구 부리고 때리고 죽이는 이야기들이다. 그런 스토리를 보고 즐긴 것이 미국인들이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살아야 할 장소, 소위 레저베이션(Reservation)을 정해 주고 거기서 나올 수 없게 하는 정책을 써왔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사람 이하의 존재로 취급것이다. 그들을 죽이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였다.

인도는 지금까지도 인간의 부족에 따른 차이를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 공산주의 국가들이 표면상으로는 평등을 부르짖지만 현실로는 독재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다. 지배층이 대를 이어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사회주의 이념이 아니다.

창문을 열자. 평등 자유 공존의 창문을 열자. 그것이 봄의 기운을 맞는 인간의 바른 길이다. 자유를 억누르며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다. 평등을 무시하고 행복을 말할 수 없다. 지배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주인이 되려는 생각을 버리고 함께 살고 함께 잘 되는 길을 걷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살 길이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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