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니묄러 목사의 경고

2021-04-09 (금) 여주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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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발생 후 지난 1년간 사람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소상인들은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영업기준이 수시로 바뀌어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현실에 우리는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닐까. 정부가 주는 실업수당 등의 혜택을 받으면서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며 나 몰라라 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또 교회들이 문을 열지 못해 주변의 교인들이나 목회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비신자들은 “하나님이 구해줘야 되는 것 아닌가?”고 빈정대지는 않았을까?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BLM(Black Lives Matter) 시위로 지난해 내내 시끄럽더니, 최근에는 아시안을 비하하며 폭행하는 사건들이 미전역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 모두 언제고 희생될 수 있는 당사자가 돼버렸다.


도시마다 한인사회가 혼란스러운 요즘, 한 목사가 외친 시구가 불현듯 머리에 떠오른다. 독일 나치당의 만행에 무관심으로 방조했던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면서 나치 파시즘을 반대하며 고백교회(告白敎會) 운동을 이끌었던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이야기다. 시적인 형식으로 전해지는 그의 글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무관심과 몰지각한 대중을 경고하는 것으로, 원 제목은 ‘처음 그들이 왔을 때’이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는 나를 위해 와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니묄러 목사는 나치의 만행에 무관심으로 방조했던 침묵하는 다수를 비판했다. 니묄러 목사는 제1차 세계 대전때 U보트에서 복무한 해군장교였다. 그는 당시 전사율이 높은 U보트에서 살아 돌아와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그는 게르만 민족의 영광을 외치던 히틀러에게 열광적 지지를 보낸 평범한 독일인이었다. 그러나 나치가 불의한 전쟁을 벌이고 유대인 학살을 자행하는 것을 목격하고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니묄러와는 달리 독일의 성직자와 지식인, 그리고 국민 대부분이 나치의 만행에 침묵했다.

처음엔 유대인들이 제거되는 것을 구경만 했지만 다음엔 장애인들, 정신질환자들, 그리고 나중에는 모든 정치적 반대파들이 제거되는 것을 그저 방관하기만 했다. 그렇게 힘없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비대해진 권력 앞에 자기 혼자밖에 남지 않게 된 것이다.

지금 나에게 상관없는 일이라고 방관으로 처신하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침묵이 마지막에는 자신을 향하게 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예화이다.

요즘처럼 살기가 어려워지면 힘 있는 세력이 군림하게 마련이다. 히틀러의 등장이나 조선을 삼킨 일제시대의 군부, 김일성이나 모택동 같은 독재자에 의해 공산화된 모든 나라 정권들이 그랬다.


지금 미국의 현실은 어떤가. 흑인 인권을 주장하고 파시즘 반대를 부르짖는 젊은 시위대들이 미전역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는 미국인들의 반 아시안 증오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이를 방관한다면 우리도 니묄러 목사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폭동이 한창일 때, 중국계는 뉴욕경찰을 보호하자며 시위행진을 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민첩하게 정치력을 보였지만, 한인들은 남의 일처럼 수수방관만 했다.

자고 깨면 곳곳에서 반 아시안 증오 사건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런 때 나만 아무 일 없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과연 나만 안전할 수 있을까. 니묄러 목사의 경고가 새삼 생각나는 요즈음이다.

<여주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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