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으로 미국에서 산다는 것

2021-04-07 (수)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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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전에 생각지도 않은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평소에 연락이 없던 사람으로부터였다. 그는 내가 사는 지역의 어떤 소수 종교 이익단체 책임자였다. 그리고 그 이메일은 몇 명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유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가 다음 학년도 학사 캘린더를 결정하는 과정 중이었다. 그런데 이메일 내용인 즉 교육위원회가 고려하고 있는 캘린더 초안들에 아시안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음력설날(Lunar New Year’s Day)이 빠져있어 그 부분에 미안함을 느낀다며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굳이 나에게 사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런 이메일을 보내주었으니 내가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메일을 보낸 동기가 나에게 사과하고 해명하기 위해서만은 아닌 것 같았다. 대신 이메일을 보낸 사람과 공유자들이 궁극적으로 얻고자하는 바를 위해 나를 설득하고 지지를 요청하기 위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가 더 이상 현직 교육위원은 아니지만 적어도 교육에 관련된 이슈에 관해서는 지역 아시안 커뮤니티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던 것 같았다.


그 이메일을 보낸 사람과 공유자들은 내년 학사일정에 본인들이 속해 있는 유대교, 힌두교, 이슬람교의 중요 기념일들이 휴일로 책정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공립학교에서는 종교 휴일을 둘 수 없다. 크리스마스는 국경일이기 때문에 예외이다.

그런데 학생들의 출석 통계자료를 살펴보니 그들이 주장하는 날들만 학교 휴일로 지정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오히려 음력설날에 결석하는 학생들이 더욱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날을 빼놓고 자신들의 종교 기념일들만 휴일로 해 달라고 주장하기엔 설득력이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에 나에게 연락을 취해 그런 오류에 대한 사과를 하면서 앞으로 그런 오류를 잡도록 할테니 이번에는 일단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진행해보자고 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메일을 받은 후 나는 그 때까지 이 사안에 대해 진행되어온 과정을 우선 알아보기로 했다. 통계 자료들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몇 명의 현직 교육위원들에게 연락해 쟁점들에 대해 설명을 듣고 질문도 하며 나의 의견도 피력했다. 이메일을 보내온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는 내용을 해줄 수 없어 주저했지만 그래도 답장을 보내는 게 예의일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받은 이메일이 내가 아시안이라는 사실을 거론한 만큼 나도 아시안 입장에서 답장을 쓰기로 했다.

그래서 아시안에게는 음력설날 뿐 아니라 추석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소수 종교가 존중 받기 원한다면 불교 같은 아시안 종교도 그냥 지나치지 말라고 지적했다. 내가 불교 신자는 아니다. 그러나 세계의 다양한 종교에 대한 학생들의 교육과 소수종교인들의 권익 보호에 의미를 둔다면 세계 5대 종교 중 하나인 불교도 그냥 지나치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나의 답장 내용이 그들이 바랐던 것이 아니었음은 분명했다. 답장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교육위원회의 내년도 캘린더 최종 결정에 대해 불만을 표출할 때 음력설날, 추석, 그리고 불교 기념일은 자신들의 관심사가 아니기에 거론하지 않았다.

요즈음처럼 아시안으로 아니 한인으로서 미국에서 사는 게 아리도록 느껴지는 적도 없는 것 같다. 언론 보도를 통해 볼 수 있는 아시안 차별 항의 시위나 기사들에 아시안 뿐만 아니라 다른 미국인들도 동참해주는 것을 보면서도 분노가 인다. 소수인종의 권익에 대해 정책입안자들이 거론할 때 과연 아시안은 실제로 얼마나 배려되나에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언제나 흑인들이나 히스패닉들이 보호 받는 것만큼 우리 아시안들도 혜택을 받게 될까. 아니 혜택은 고사하고 오히려 역차별은 없나를 생각하게 된다.

아시안 차별에 대한 항의 시위는 이제 구호에 그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응당 찾아야할 몫을 찾아야한다.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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