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다가 올라온다

2021-03-30 (화)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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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전 한국서 놀러온 친지들과 함께 북가주 보데가 베이(Bodega Bay)에서 며칠 휴가를 보낸 적이 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 바닷가 마을은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해안선을 따라 그림 같은 별장들이 늘어서있고, 굴 특산지이면서 인근에 소노마 와인컨트리와 울창한 레드우드 삼림이 있어서 자연 속 휴가를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이곳의 해안선이 지금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LA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해수면 상승으로 파도가 넘쳐 절벽꼭대기의 주택 11채가 파손됐고 방파제도 오래 전에 다 부서졌다는 것이다. 바다에서 가까운 1번 하이웨이의 일부 구간도 툭하면 무너져 내려 여러번 보강공사를 했으나 결국 레인이 하나로 축소됐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남쪽의 해안마을 퍼시피카(Pacifica)는 부두와 주요도로가 침수됐고, 모래폭풍에 주택들의 창문이 깨지는 일이 잦다. 산비탈 하나가 통째로 파도에 휩쓸려 사라진 후, 절벽 위의 집들은 거주 불가능 딱지가 붙었고, 아파트 건물 3채가 철거됐다.


LA 타임스는 2년 전에도 ‘캘리포니아의 해안선이 사라지고 있다’란 제목의 탐사보도를 냈다. 남가주에서 북가주까지 1,200마일에 이르는 아름다운 해변들이 어떤 위기에 봉착해있는지 큰 충격을 안겨준 보고서였다. 금세기 말까지 캘리포니아 해변의 3분의 2가 사라지고 1,500억달러의 부동산 재산이 침수된다는 것이다.

해수면 상승(Sea Level Rise)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가 당면한 가장 큰 자연재난의 하나다. 머잖은 미래에 바다수위가 올라오면 1번 하이웨이와 샌디에고의 해안 철도, 말리부의 고급주택들은 물속에 잠기게 된다.

문제는 이 재난이 산불이나 지진, 폭염과 가뭄처럼 매년 찾아오는 게 아니라 천천히 찾아오고 있기 때문에 실감이 나지 않고 뾰족한 해결책도 없어서 많은 로컬 정부들이 손을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9년 가주의회분석실(LAO) 보고서는 가주의 해안상승에 대한 대처가 이미 늦었다고 경고했다.

학자들은 지구 해수면이 10년 내에 6인치, 2050년까지 3.5피트, 2100년까지는 9피트 이상 상승할 것으로 추산하는데, 국립해양대기청(NOAA)에 의하면 3피트만 상승해도 말리부 비치가 물에 잠기고 뉴욕 허드슨강의 엘리스 섬은 절반 크기로 줄어들게 된다.

해수면상승은 지구온난화로 수온이 올라가면서 바닷물의 부피가 팽창하고(44%), 빙하가 녹아내려 수위가 상승하는 것(56%)이 원인이다. 그 결과 2050년까지 세계 주요도시들이 침수되고 매년 3억명이 직접 피해를 입는다는 경고가 끊이지 않는다. 베트남 호치민, 중국 상하이, 태국 방콕, 뉴욕 맨해튼이 위험지역들이고,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는 이미 해안가 부촌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030년 즈음에는 국토의 5% 침수되고, 강한 태풍이 찾아올 경우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이 침수된다는 보고도 나왔다.

그러면 해결책은 없을까? 마이애미를 비롯한 많은 해안 도시들은 수년전부터 방조벽을 쌓거나 모래를 실어다 해변을 넓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둘 다 비용이 엄청날뿐더러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방벽 1마일을 쌓는 비용은 수천만달러, 만일 1,200마일에 이르는 캘리포니아 전체 해안선을 따라 방벽을 세운다면 향후 20년간 220억달러의 세금이 소요된다.

모래를 옮겨다 쌓는 것은 더 큰일이다. UC 산타크루즈 해양과학연구소에 의하면 해변 0.5마일에 100피트 폭으로 모래를 쌓으려면 덤프트럭 2만4,000대가 16개월 동안 날라야한다. 그런데 모래라는 것이 늘 움직이고 쓸려가므로 몇 년에 한번씩 반복해야한다는 것이다.


마이애미에서는 바닷물을 퍼내는 장비를 동원하기도 하고, 주택을 기둥위로 올려 짓거나 도로지반을 높이는 방법도 사용되고 있는데, 모두 엄청난 자원이 소요되고 역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그런데 해수면 상승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것들이 아니다. 우리가 마시는 식수, 수자원의 오염이 가장 심각한 난제다. 바닷물이 내륙으로 침투하면 갇혀있던 지하수가 역류하면서 하수관을 부식시키고, 토양에 묻혀있던 유독 오염물질이 물과 뒤섞이게 된다. 또 짠 바닷물이 서서히 건물의 토대와 도로지반으로 흘러들고 하천이나 깊은 대수층으로 침투하게 되면 지하수에 의존하는 커뮤니티가 큰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UC버클리 보고서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연안의 많은 지역에서 바닷물이 이미 지상까지 밀려들어오고 있고, 살리나스 밸리 농가의 우물물과 옥스나드 평원의 지하수는 염분농도가 높아지고 있다. LA카운티수도국도 해수 침투에 대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베니스와 헌팅턴 비치는 물론 롱비치에서 샌디에고에 이르는 저지대가 해수 침수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엄청난 일이 다가오고 있다는데도 도무지 느낄 수 없으니 더 무섭다. 개인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적극적으로는 내륙 안쪽으로 이사하고, 소극적으로는 탄소배출을 줄이는 환경보호노력에 동참하라는 권유가 있다. 그것밖에 방법이 없는지, 무력감이 몰려온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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