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의 ‘한중일’

2021-03-25 (목)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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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가 다 다른 데도 한 덩어리로 여겨지는 게 미국의 아시안들이다. 당사자로서는 반갑지 않다. UC 한 캠퍼스의 카운슬링 센터 소장을 만난 적이 있다. 한인 2세들이 대학에서 겪는 어려움을 들려주던 그는 인터뷰 말미에 자신을 “오키나와 3세”라고 소개했다. 제주도 출신이라고 ‘제주도 3세’라고 하지는 않지 않는가. 나중에 일본의 오키나와 병합 역사를 알기까지 그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한인들은 위안부 문제 등 좋지 않은 일과만 엮이게 되는 일본에 대한 감정이 썩 좋지 않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마켓에서 집어 드는 중국산 식품은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 것인지 신경부터 쓰인다. 이런 한중일의 구별은 우리 생각일 뿐, 일반 미국인들에게 아시안은 같은 사람들이다. 일본 출신과 오키나와 출신을 우리가 굳이 구별하려 들지 않는 것과 같다.

50년 가까이 라티노 속에서 살아온 한 한인이 전하는 서로 다른 라티노 이야기는 흥미롭다. 과테말라 출신은 협동심이 강하다고 한다. 전화 한통이면 트럭을 타고 몰려올 정도. 민족성이 강하고, 체구도 작다. 1달러를 따진다. 엘살바도르계는 좋게 말해 영리하다. 돈 되는 걸 빨리 알아 차린다. 한인으로서는 신경 쓸 일도 있다는 말이다. 장사도 잘 한다. 멕시코 출신은 내일 돈 떨어져도 오늘 잘 먹는 사람들, 대부분 유순하다. 이 사람들 때문에 장사가 된다고 한다.


이런 라티노를 우리는 구별하지 않는다. 다른 점을 알 수도 없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이든, 페루 출신이든 스패니시만 쓰면 같은 히스패닉. 흑인은 말할 것도 없다. 콩고 출신인지, 잠비아 출신인지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심지어 서인도 출신도 검으면 ‘아프로 아메리칸’에 포함된다.

미국에서 아시안은 ‘영원한 외국인’이다. 무엇보다 외관상 그렇다. 이민 5세를 내려가도 갓 이민 온 사람과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아시안은 외국 출생’이라는 집단 이미지가 강하다. 출신국에 따라 구별하는 것도 쉽지 않다. “중국인?” “일본인?” 이런 질문을 받는 한인은 많지 않은가.

전임 대통령은 코로나를 ‘쿵 플루’ ‘차이나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아시안 혐오를 부추기는데 한 몫을 했다. 미국인 10명 중 4명은 아시안들이 옆에 왔을 때 편치 않았다고 한 조사에서 밝혔다. 초기 코로나 바이러스는 유럽에서 유입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람. 분노를 쏟아낼 데가 있어야 했다.

중국은 요즘 사사건건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얼마 전 알래스카에서 벌어진 양국 고위 당국자의 공개 설전이 대표적이다. 중국에서 들어온 병원 마스크는 엉터리라고 하지, 아무거나 베껴 먹는다고 하지, 기업비밀은 훔쳐간다고 하지-. 미국에서 요즘 중국은 예쁜 구석을 찾기가 힘들다. 중국에 대한 여론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아시안 증오범죄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길가던 중국계 노인이 맞고, 일본계 여교사가 맞는가 하면, 미군을 갔다 온 한인 제대군인도 맞았다. “아임 낫 차이니스!” 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지난 1년간 보고된 아시안 증오범죄 중 40%를 차지한 중국계에 이어 한인은 15%로 두 번째로 많았다고 한다.

아시안은 모범적 소수계? 공부 잘하는 아시안은 더 문제다. “하버드, 예일 이런 덴 좀 덜 들어왔으면 좋겠어”. 속 마음을 털어 놓으면 이렇다. “당신들이 우리 라이프 스타일도 바꿔 놨어. 고교 때는 치어리더도 하고, 밴드도 하는거야. 전인교육은 생각하지 않고, 죽어라 책만 파고 들어, 좋은 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은 다 들어가니, 우리 애들도 공부만 시킬 수밖에 없잖아. ”

미국인 부모의 이런 불만.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오래 전 전해 들은 말인데 지워지지 않고 기억에 남아 있다. 웃는 낯으로 “하이-“하며 지나가는 이웃과 직장 동료 중에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한인상가의 간판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간판이 한글 일색이니 비상 출동을 할 때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한글뿐 아니라 소수계 언어 간판이 남가주 각지에서 잇달아 이슈가 되던 때였다. 가든그로브 시 공청회에 한 아시안 권익단체 변호사가 나왔다. “간판이 한글이라는 이유로 단속하려 하지 말라.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 위반이다”. 그녀는 일본계 2세 변호사였다. 트래픽을 뚫고 LA에서 내려온 그녀는 이 말을 한 뒤 낡고 작은 차를 타고 떠났다. 그녀를 청한 한인단체도 없었고, 수고했다고 인사한 한인도 없었다.

아시안 증오범죄가 일깨워 주는 교훈은 많다. 그중 하나는 미국의 아시안들은 연대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한국인과 미주 한인, 일본인과 재미 일본인은 다르고 달라야 한다. 미국의 아시안들이 지나치게 본국의 입장에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일, 한중 관계의 갈등을 고스란히 가져와 여기서 반복하고 증폭시킬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는 아시안 아메리칸들에게 닥친 일이 너무 엄중하고, 맞서야 할 상대는 너무 거대하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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