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3일 매서추세츠 주 피츠필드 버크셔칼리지 체육관의 백신 접종센터에서 첼리스트 요요마가 깜짝 공연을 펼쳐 우울한 현장 분위기를 단숨에 떨쳐냈다.
백신을 맞고 난 요요마는 첼로를 꺼내더니 체육관 벽을 등진 의자위에 앉아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1번과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를 연주했다. 소란스런 실내가 갑자기 조용해졌고 음악을 들은 후 사람들은 치유받은 기분이라고들 말했다.
요요마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중국계 첼리스트로 그래미상을 15번이나 거머쥐었고 한국은 물론 뉴욕 링컨센터 무대에도 자주 서는 당대 최고의 첼리스트다. 모자와 마스크 쓴 허름한 셔츠 차림의 동네 아저씨 요요마가 연주를 들려주자 백신 대기실은 물론이겠고 뉴스를 본 본인도 인간미 넘치는 이웃으로부터 따스한 온기를 나누어 받은 것 같다.
더구나 아침에 눈만 뜨면 흉흉한 인종차별 사건이 난무하는 요즘, 같은 아시안인 그가 아시안들의 고통, 불안, 공포의 삶을 달래준 기분이다,
바흐 무반주 첼로모음곡은 요요마가 네 살 때부터 켜기 시작해 60년 이상 함께 해온 곡으로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 곡에서 치유와 영감, 창조와 같은 힘을 점점 느낀다’고 말했었다. 상실의 아픔을 겪고 있는 이 시대에 차이와 분열, 인종을 넘어 함께 할 수 있는 미래를 그리는 것이다.
요요마의 소식을 듣자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수필 중 한 대목이 떠올랐다. 1968년 국어책에서 읽은 음악평론가 박용구 선생의 수필은 아직도 그 내용이 기억날 만큼 감동적이었다.
1951년 1월 한국전쟁은 1.4후퇴를 맞아 수많은 사람들이 남으로 피난을 갔다. 피난열차 차량은 가득 찼고 열차 위에도 사람들이 빼곡하니 앉아서 겨울바람에 몸을 떨며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 기차는 가다가 서기를 반복했고 한번 멈추면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더욱 커졌다.
그 두려운 시간, 한 젊은이가 축음기를 꺼내어 레코드를 얹더니 바늘을 올려놓았다. 바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고요하고도 평온한 선율이 겨울 들판에 울려 퍼지자 그 일대가 정적에 빠졌고 모든 이들이 당장의 괴로움을 잊고 불안감을 극복했다.
이 ‘G선상의 아리아’ 곡명은 잊을 수가 없는 것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음악의 위대함, 문학의 위대함을 접한 것이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관현악 모음곡 중 하나인 이 곡은 바이올린의 4개 현 중 가장 낮은 음인 G현만으로 연주된다.
작년 7월에는 KBS1 TV가 정전협정 67주년특집으로 ‘D선상의 아리아’ 뮤직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도 했다. ‘D선상의 아리아‘는 전쟁 이후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전했는데 6.25 전쟁고아 어머니를 둔 한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중심이 되었다. 그는 올해 제63회 그래미상 베스트 클래시컬 인스트루멘털 솔로 부문을 수상했다.
지금, 우리는 폭탄이 떨어지고 집이 불타는 전쟁보다 더 위협적이고 희생자가 많은 코로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주위에 백신을 맞은 사람이 점점 늘고 있지만 여전히 코로나로 가족, 친지, 지인을 잃은 이웃이 많다. 작별인사 없이 손 한번 못 잡고 보낸 이들은 상실감과 슬픔으로 우울증을 앓기도 한다.
2020년에 이어 지금도 마스크를 쓴 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고 식당이나 카페가 조금씩 문을 열고 있지만 여전히 앞날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많이 피곤하고 지쳐있다.
단 한 줄의 메시지가 커다란 위로와 격려를 줄 수 있다. 상처받은 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것 이상으로 고마운 일도 없다. 누구나 할 인사치레는 하지 말고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바흐의 음악이 위로와 희망을 건넸다면 좋아하는 음식이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보고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위로를 건네자. 우리 모두 따스한 위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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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