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법체류자’ 아닌 ‘서류미비자’

2021-03-11 (목) 최인혜 시카고 하나센터 사무총장
작게 크게
새롭게 출범한 바이든-해리스 행정부가 집권한지 한 달여 후인 지난 2월18일, 바이든 대통령이 포괄적이민법 개혁안(U.S. Citizenship Act)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1,100만여 명의 서류미비자 구제뿐만 아니라 임시보호신분자들에 대한 신분 해결, 난민수용 쿼터 증가, 가족이민 쿼터에 따른 적체 해소 등 미국 이민법과 관련된 많은 난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포괄적 법안이다. 이 법안이 법제화되는 데는 아직 여러 장애물이 존재하지만 친이민자 정책기조를 가지고 있는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에서 다수당을 구성하고 있기에 현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이민자구제 법안의 통과 가능성이 높다.

법안이 다루고 있는 한 가지 주목해야할 부분은 이민법 내에서 외국인을 지칭하는 ‘Alien’이라는 용어를 ‘Non Citizen’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법안의 다른 부분만큼 주목받고 있지는 않지만, 이 변화는 이민자를 지칭하는 법률적 용어를 교체함으로써 그 대상을 더 명확히 지칭하고, 또 이전용어에 녹아있던 반 이민자적 정서를 바로잡는데 그 의의를 두고 있다.


이 변화는 이민자 권리단체들이 10여년 전부터 진행해왔던 ‘불법체류자’라는 의미의 ‘Illegal Alien’을 ‘서류미비자’라는 의미의 ‘Undocumented Immigrant’로 대체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런 노력으로 현재 주류사회에서는 ‘Undocumented’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주요 언론사에서도 ‘Illegal Immigrant’라는 단어 사용이 금기시되는 추세이다.

이 구시대적 용어를 바꾸자하는 데는 크게 법률적인 이유와 인권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법적인 이유는 첫째, 현행 미국법상 적법한 서류 없이 미국 내 체류하는 것은 형법으로 처벌하는 범죄가 아닌, 민법으로 다루어지는 위반사항이므로 단순위반의 사유만으로 인간을 불법행위자로 지칭하고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둘째, 복잡한 셈법이 작용하는 이민법 체계 내에서 위법은 법원의 판단으로만 결정될 수 있는 사항이며 법원의 판단 전까지는 모든 범죄에 대해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성립되므로, 단순히 현재 신분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1,100만 명의 구성원 전체를 미리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법의 원칙을 위배한다.

인권적인 이유에서 ‘불법체류자’라는 용어의 문제를 살펴보면 이 단어가 공격적인 의미를 내포하며 특히 미국에서는 반이민 진영에서 지속해서 사용하면서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혐오 등의 부정적 인식을 주는 단어로 통용되고 있다. 또 법적인 의미를 넘어서 이 단어는 현재 미국 이민자의 대부분이 유색인종임을 미루어볼 때 인종에 대한 증오를 대변하는 단어로도 사용됨을 기억해야 한다.

이민자 사회의 일부인 한인 동포사회는 이러한 점을 기억해서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이런 단어 사용을 지양하고 법적으로 명확하고 편견과 혐오적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 ‘서류미비자’라는 단어 사용을 권장함이 마땅하다.

이민 문제, 특히 서류미비에 관한 구제 문제는 단순히 중남미국가 출신 이민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7,000여 명 이상의 한국 출신 청년들이 DACA로 알려진 서류불충분 청년 추방유예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고 있고 이는 비 중남미국가 출신 중 가장 높은 숫자이다.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현재 미국 내에는 최소 13만에서 최대 20만 명의 한국인 서류미비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한국계 미국인 여섯명 중 한명은 서류미비 상태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들을 미루어 볼 때 우리 공동체의 존엄성을 해치는 단어를 배제하여 인종과 출신국에 상관없이 공정한 대우를 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을 실어야할 때이다.

<최인혜 시카고 하나센터 사무총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