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법 중에는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로 생긴 대중적 인지도를 이용하여 수익을 챙기지 못하도록 하는 소위 ‘샘의 아들법’이란 게 있다. 미 육군 출신 택시기사 데이비드 버코위츠(David Berkowitz)가 이 법 배경의 주인공이다.
버코위츠는 1976년 1년간 권총을 이용한 묻지마 총격으로 6명을 살해하고 7명을 중태에 빠뜨려 뉴욕시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간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이었다.
1977년 여름, 뉴욕 근처 자가에서 체포된 범인은 “악마가 자신의 이웃 ‘샘’이 키우던 개로 현몽하여 어린 여자의 피가 필요하니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했다”며 횡설수설했다. 정신병자처럼 수사당국을 속여 감형 받으려던 수작이었지만 총 365년 형을 선고 받고 지금도 복역 중이다.
버코위츠는 범행 현장에 자신을 ‘샘의 아들’이라고 소개하는 편지를 놓아두거나 추가 범죄를 예고하는 등 대담하고 기괴한 행동으로 1년 동안이나 경찰을 갖고 놀아 공포심과 더불어 대중적 인지도와 호기심 또한 상당했다.
그러다 보니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코자 한 출판사가 생겨났는데 체포 후 12만 달러에 범행 일대기 출간 계약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뉴욕주의회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범죄자로부터 이야기를 구입하는 측은 범죄자 본인 대신 범죄피해자위원회(Crime Victims Board)에 돈을 지불토록 하는 ‘샘의 아들법’을 미국에서 처음으로 제정했다.
정의의 기수로 칭송 받던 이 법은 1991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출판사 사이먼 앤 슈스터(Simon & Schuster)는 마피아에 몸담았던 헨리 힐(Henry Hill)과 9만6,000달러에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와이즈 가이(Wiseguy)’라는 제목으로 출판키로 계약했다.
이를 안 범죄피해자위원회가 중간에서 수익금을 거둬가려고 하자 ‘샘의 아들법’은 언론출판의 자유에 위배된다고 출판사 측이 소송을 제기했는데 연방대법원이 8:0 만장일치로 출판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아무리 범행은 나쁜 것이라 하더라도 일부는 워터게이트 스캔들과 같이 대중의 중요한 관심사인 만큼 범죄자들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공간을 허용해줘야 한다는 논리였다.
위헌 판결 이후 이 법은 범행 관련 소재로 범죄자의 수입이 1만 달러 이상일 경우 피해자에게 통지를 해주는 것으로 개정되었다. 피해자들이 바로 가해자를 민사법원에 고소해 금전적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이 법이 지난 2.11. 가석방으로 풀려난 희대의 가짜 상속녀 사건으로 다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2013년 당시 약관 22살의 나이로 뉴욕 사교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애나 소로킨(Anna Sorokin)은 애나 델비(Anna Delvey)라는 가명으로 유럽 자산가의 상속녀 행세를 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온갖 명품으로 치장한 자신의 호화 일상을 SNS에 올리는가 하면 뉴욕 번화가 파크 애브뉴에 고급 미술전시관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사업 계획도 내세웠다.
사실 그녀의 아버지는 독일에서 조그만 냉난방 업체를 운영하는 영세업자에 불과하였고 그녀도 프랑스의 패션잡지 퍼플지의 인턴이 경력의 전부였다.
이런 4년간의 가짜 행각은 2017년 경찰에 체포되면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녀는 재판에서 절도와 사기, 호텔 무단숙박 등으로 27만 달러의 빚을 진 혐의로 최소 4년~12년의 징역형과 손해배상금 20만달러, 벌금 2만4,000달러 형을 선고 받았다.
최근 출소를 앞두고 인터넷 동영상 회사인 넷플릭스가 32만달러를 주고 그녀의 스토리를 사 ‘애나 만들기(Inventing Anna)’라는 드라마 제작에 들어갔으나 ‘샘의 아들법’으로 정작 본인은 땡전 한 푼 만져보지 못하고 수익금 전액을 손해배상금으로 낸 것으로 전해진다. 하나의 법을 가운데 두고 가해자와 피해자간에 전개되는 상황 반전이 마치 새옹지마 고사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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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락/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