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본의 자산, 우리의 걸림돌

2021-03-05 (금) 권정희 논설위원
작게 크게
40여 년 전인 1979년 워싱턴 D.C.의 존 F. 케네디 공연예술센터에서 색다른 공연이 시도되었다. 일본의 전통 공연예술인 가부키였다. 공연장은 썰렁했다. 객석의 절반이 비었다. 하지만 3년 후인 1982년, 분위기는 달라졌다. 그해 여름 케네디 센터에서 공연된 ‘그랜드 가부키’는 매회 전석 매진이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미국에서 만개하는 일본문화’라는 제목으로 미국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일본 열풍을 전했다. 뉴욕에 일본식당이 늘어나고, 날 생선이라면 기겁을 하던 미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스시를 먹는가 하면 영화, 패션, 건축 등 일본 것이라면 호감부터 갖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오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72년 일본 외무성 소관으로 설립된 재팬 파운데이션(일본국제교류기금)이 출발점으로 보인다. 전후 황폐했던 일본은 경제적으로 부강해지면서 국가 이미지 개선에 나섰다. 국제문화교류사업을 통해 일본에 대한 이해와 국제 상호이해를 증진하겠다는 취지였다. 일본 알리기 사업이 다양하게 추진되었고, 앞의 가부키 순회공연도 이 기금이 주도했다.


아울러 중요한 사건은 ‘쇼군’이다. 일본 도쿠가와 막부시대에 폭풍으로 일본 바닷가에 표류해온 영국 선장이 사무라이 생활을 시작하고 쇼군(장군)의 자리에까지 오른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할리웃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제임스 클라벨이 1975년 펴낸 이 소설은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1980년 영화로, TV 미니시리즈로 제작돼 대성공을 거두었다.

클라벨은 집필에 앞서 미리 거액을 받았고, 일본의 모 재단이 돈을 댔다는 후문이다. 결과적으로 소설은 일본 선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런 뜨거운 대중적 관심 속에 미일 문화교류 기관들이 속속 등장했고, 이어진 것은 일본 대기업들의 미국대학 연구기금 지원이었다. 시작은 1970년대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미국 방문 중 하버드, 프린스턴 등 10대 명문대학에 각각 100만 달러씩 기부한 것이다. 이어 대기업들이 줄줄이 미국 대학들에 거액을 지원하면서 대학마다 일본학 과정이 개설되고,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미쓰비시 등 기업 이름 붙은 교수직들이 설립되었다.

그렇게 수십년, 일본은 중요한 자산을 확보했다. 일본에 호감을 갖는 친 일본 학자들이다

상황은 한국도 비슷했다. 1990년 즈음 학계에는 일본 보수우익 기금이 국내 학계에 무분별하게 들어오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A급 전범이었던 사사카와 료이치가 설립한 니폰재단 산하 사사카와 평화재단이 학자들에게 연구비, 국제회의 운영비 등을 지원하고, 석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면서 수혜자 명단을 관리한다는 것이었다.

1995년 니폰재단의 돈으로 설립된 아시아연구기금 등 일본의 우익자금은 지속적으로 한국의 학술계로 들어왔다. 그들이 돈을 대면서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일본에 친화적인 학자들을 확보해 자신들의 보수우익 관점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키려는 의도일 것이다.

하버드대 로스쿨의 미쓰비시 일본법학 교수인 마크 램지어가 “위안부는 계약으로 맺어진 매춘부”라는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해 일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에서 태어난 후 개신교 선교사 부모를 따라 일본에 가서 자란 그는 일본을 제2의 조국으로 여길 것이다. 2018년 일본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을 정도로 그는 일본과 친밀하다.


그는 위안부가 강제로 끌려간 성노예라는 주장은 완전 허구라고 단언한다. 한국 측의 이런 주장은 인종주의, 제국주의, 성차별 등 요즘 유행인 3대 주제에 딱 들어맞아서 서구 학계에 먹히고 있지만, 사실은 픽션이라고 그는 보수매체 재팬 포워드 기고문에 썼다.

그의 주장은 일본의 극우 관점을 일말의 의심도 없이 그대로 되풀이 한 것. 일본으로서는 친 일본 학자 한명을 제대로 키워낸 셈이다. 한국에서 램지어에 동조하며 같은 목소리를 내는 학자들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일본의 자산이자 우리에게는 걸림돌인 이들 학자 혹은 이들의 관점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명백한 역사 왜곡에 대한 사과촉구, 논문철회 청원 등 규탄의 목소리가 높지만 효과가 있을 지는 의문이다. 학계에는 학문의 자유라는 훼손될 수 없는 벽이 있기 때문이다.

보다 전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 중 두 여성학자들의 역할을 주목한다. 하버드 법대의 석지영 교수와 이스턴 일리노이대의 이진희 교수다. 석 교수는 뉴요커 기고문을 통해 램지어 논문의 허점을 조목조목 비판했고, 이 교수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재일교포 차별을 정당화한 램지어의 다른 논문의 문제점을 파악, 논문 수정과정을 거치도록 학술지 측을 설득했다. 학자로서 램지어에게 각성의 계기가 되고, 일본우익 주장에 경도된 다른 친 일본 학자들에게도 경종이 되었으면 한다.

일본은 재팬 파운데이션, 중국은 공자연구소를 앞세워 무섭게 세계를 파고들고 있다. 문화를 내세우지만 정치적 도구로 활용 가능한 자국 선전기관들이다. 한국도 보다 치밀한 로비가 필요하다. 전쟁터에 끌려가 짐승 취급당했던 조선의 딸들이 언제까지 모욕을 당해야 하는가.

<권정희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