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Pfizer)라는 이름이 코로나 시대만큼 유명했던 적이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부터 익히 듣던, 왠지 믿음이 가는 제약회사 ‘화이자’의 사장 부인이 백신을 맞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웨체스터 인터넷 뉴스에 떠 올라 있어서 놀랐다.
정말로? 답은 맥이 빠질 정도로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이었다.
“제 차례가 아니라서요. “
스카스데일에 살고 있는 화이자 사장 알버트 부울라(Albert Bourla) 씨의 부인 미리암 씨는 46세, 백신을 맞으려면 한참 더 있어야 할 거라고 했다.
지난 주에 두번 째 백신을 맞았다. 예상했던 대로 몸살과 두통으로 고생을 하고 나니 코로나에 대한 안심은 되지만, 아직도 백신을 맞지 못한 분들에게, 마치 새치기나 한 것 같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주변에는 지난 12월부터 우선 순위에 들어있던 75세 이상인데도 백신을 맞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꽤 된다. 그런가 하면 뉴저지에서 제 1순위인 의료직에 종사하는 친지에게서 아직 차례가 안 왔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통계적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백신 맞기가 더 어렵다고 해서 미국도 빽이 있어야 뭘 하나보다 했었다. 그렇다면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가 있는 것도 빽이 될 수 있는지.
아침 뉴스에서 ‘65세 이상’ 이라는 활자를 보자마자, 주정부 백신 사이트를 찾고 있는동시에 아이들로부터 텍스트가 쇄도 했다. Mom, click this link… Mom, try this one…사이트를 열어 조심스레 하나씩 답을 해나가다 보니 끝에, 컨퍼메이션 번호가 떴다. 드디어 백신을 맞게 되나 보다 했으나, 막상 주사 맞는 장소 리스트 정보가 열리지 않았다. 그런 중에 어느 날 딸이 어느 사이트에서 곧바로 약속 날짜를 받아줬다.
이렇게 기쁠 수가 있을까. 아이들이 대학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이만했을까.
작년부터 백신만 나오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았지만, 막상 화이자 백신과 모데나 백신이 FDA허가를 받고 나서도, 일반인이 백신을 맞는 일은 머나먼 미래의 일로 여겨졌었다. 지금, 코로나 퇴치에 올인 한다는 정부가 들어선 이후 백신을 맞는 일이 비교적 쉬워 졌다고는 해도, 일반 사람들은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한다.
이런 상황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백신을 맞을 수 있을 것 같은 화이자 사장네 가족이 순순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는 뉴스는 정말 신선함을 준다. 바로 이런 점이, 한 밤중 차가 하나도 없어도 신호등을 지키고 껌 하나를 사도 줄을 선다고 해서 감탄했었던, 신사의 나라, 미국의 얼굴이 아니었던가.
그리스 태생의 부울라 씨가 화이자에 입사한 해는 1993년이며 사장이 된 것은 2018년이다. 세계 4개국 7개 도시에서 살았다는 그 가정이 10년 전에 스카스데일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이 또한 다름이 아니라, 아이들 키우기 좋은 곳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라는 평범한 답이다.
팬데믹 중에 성과를 이뤄낸 남편이 무척 자랑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팬데믹으로 남편이 평소보다 집에서 지내는 일이 많아 좋기도 하다는 미리암 씨는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어서 스카스데일을 좋아한다고 했다.
보통사람들과 함께 겸손히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화이자 사장집이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생각이 든다.
<
노려/전 웨체스터 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