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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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기억

2021-02-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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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죄가 아니라 불편일 뿐”이라고 대개 말을 한다. 맞는 말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가난해서 빚을 못 갚으면 그 순간 죄인이 따로 없다. 큰 죄라도 지은 듯 주눅 들고 비굴해진다. 가난해서 먹을 게 없다면, 주린 배가 단순히 불편일 수는 없다. 사흘 굶은 사람 눈에는 보이는 게 다 밥이고 빵일 텐데, 그 정도면 불편을 넘어 죄로 연결된다. 장발장 케이스다.

“이 세상에는 배가 너무도 많이 고픈 사람들이 있어서, 신은 그들 앞에 빵의 형태로밖에는 나타날 수가 없다”고 마하트마 간디는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가까이서 오래 지켜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근 1년에 걸친 팬데믹이 수많은 사람들을 빈곤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기존의 빈곤층은 물론 별 어려움 없던 중산층까지도 먹을 것이 없어서 미 전역 푸드뱅크에는 줄이 끝없이 이어진다. 수요가 너무 많아 식품도 달리고 자원봉사자도 부족하다고 푸드뱅크마다 어려움을 호소한지 오래다.


세끼 식사 챙기기가 어렵다면 매달 전기료며 수도요금, 자동차 페이먼트며 보험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글로벌 시장연구 기업인 모닝 컨설트의 최근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달 납부금을 다 내지 못한 성인은 3,000만명이 넘는다.

이들 중 4분의 3에 해당하는 2,260만명은 300달러가 모자라서 납부금을 완납하지 못했고, 나머지 750만명 정도는 500달러 이상이 부족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를 토대로 모닝 컨설트는 연방정부 개인지원금 1,400달러가 나오면 수천만명이 납부금 불안 없이, 빚을 지지 않고도 서너 달을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니 바이든 경기부양책이 빨리 통과되어서 단 300 달러가 없어 가슴 졸이는 사람들의 숨통을 틔워주라는 주장이다.

최근 온라인 미디어인 버즈피드에 어린 시절 가난에 관한 네티즌들의 경험담이 소개되었다. 가난한 집에서 자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생생한 이야기들이다.

예를 들면 빚쟁이 불안에 시달리는 부모의 모습.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오면 부모님은 언제나 ‘샤워 중’이다. 그래서 대신 메시지를 받아둔다.” “누가 문을 두드려도 열지 않고, 전화가 와도 받지 않는다. 누군가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면 절대 눈에 띄지 않게 숨어야 한다.”

어린 마음에 엄마를 걱정하는 애틋함도 있다. “학교에서 필드 트립을 가도 절대로 부모동의서를 집에 가지고 가지 않는다. 엄마가 5달러~ 20달러 때문에 (나를) 못 보내면서 죄책감을 갖게 하면 안 되니까.”

필드 트립뿐 아니라 웬만해서는 병원에도 가지 않는다. “열이 104도까지 오르거나, 뼈가 부러지거나, 썩은 이빨이 안 빠져나오는 한 병원에 가는 법은 없다. 지금 30대 후반으로 보험을 가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병원에 가려면 망설여진다.”

점심 거르기는 다반사. “점심을 굶으며 ‘방금 아침을 먹어서’ 혹은 ‘곧 저녁 먹을 테니까’ 하며 둘러 댄다.” 그 마음이 오죽할 것인가.

그 외 “자동차에 절대로 개스를 다 채우지 않는다. 개스는 있는데 먹을거리가 없는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 시장을 보러갈 지 날짜를 정확히 안다. 푸드스탬프 나오는 날이다.” … ‘가난의 기억’은 이어진다.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말을 빌리면 많이 가진 자들에게 더 얹어주는 게 발전이 아니다. 너무 못 가진 자들에게 충분히 주는 게 발전이다. 가난은 불편이 아니라 상처, 참 아픈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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