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차이니즈’ 뉴이어

2021-02-19 (금) 정주디 / 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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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즈에서 가까운 롱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두 초등학생의 학부모입니다. 저희 가정은 음력설을 특별히 지키는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끼 정도 떡국을 먹으며 떡국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대화하는 정도로 가볍게 지키며 지나갑니다.

2021년 음력설을 며칠 앞두고 교장선생님에게서 이메일이 왔습니다. 2월11일, 루나 뉴이어(Lunar New Year)를 앞두고 모두 빨간색 옷을 입고 학교에 보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지침은 분명 중국에서 음력설날에 많이 쓰는 빨간색을 염두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기분이 좀 이상했습니다. 나도 음력설을 함께 지키는 입장인데 중국에서 쓰는 빨간색을 아이들에게 입힌다? 이건 뭐랄까, 야구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 양키나 메츠의 색깔인 파란색이나 주황색을 입으라고 학교에서 주문했는데 난 사실 필리스(필라델피아 야구단)의 팬이라서 갖는 고민처럼 느껴진다고 할까요? 참고로 이곳 시의 주민들은 대부분 백인들이며 약 13%의 아시안들은 아마도 대부분 중국인인 듯합니다.


담임교사에게서 온 이메일은 ‘차이니즈 뉴이어’(Chinese New Year)란 제목의 여러 관련된 활동을 담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자 써보기, 2021년의 십이지동물 알아보기 등의 문제지였습니다.

교장과 담임선생은 모두 백인이고, 음력설에 대해 잘 모르는 게 아닐까 싶어서 알려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음력 설날은 많은 아시아권 나라의 설날이지 중국만의 설날이 아니다.” 이 당연한 말을 하면 까다로운 학부모로 인식되어서 제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이 되어 고민 또 고민해본 후 최대한 예의를 지켜 조심스럽게 말하자고 결정했습니다.

교장선생님에게는 “빨간색은 중국이 음력설에 사용하는 색깔이지 한국 같은 나라는 빨간색을 사용하지 않습니다”라고 답장드렸고, 담임선생께는 “음력 설날을 중국 설날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많은 아시안 국가들도 있기 때문에 맞지 않습니다”라고 답장을 드렸습니다.

결과는? 2월11일 반에서 “빨간색을 입는 이유는 설날의 의미도 있지만 밸런타인스데이 색깔인 이유도 있다”라는 공고문이 아이들에게 전달되었고, 차이니즈 뉴이어 활동지에는 중국이란 말을 긋고 그 자리에 ‘루나’(Lunar)라는 단어를 적도록 학생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성공이었습니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이렇게 금방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어떻게 지금까지 방치되어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마을에도 분명 한인들이 살고 학부모들이 여럿 계신데 왜 아무도 중국 설날이란 명칭을 보면서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 학부모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예민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잘못된 것들이 변화할 것이고 우리 아이들이 한국계로서 자신의 뿌리에 대해 더 바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정주디 / 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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