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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 대통령의 수난시대

2021-02-17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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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까지 미국은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탄신일인 2월 22일을 공휴일로 정했다.

그러나 기념일의 날짜는 매년 2월 셋째 월요일이다. 이 날은 비공식적으로 ‘Presidents' Day(대통령의 날)’라고 하며, 2월 12일 태어난 에이브러햄 링컨을 함께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날 미국은 공식적으로 역대 대통령을 기리고 추모한다.

하지만 올해는 대통령 수난의 날로 기려야 했던 것이 아닐까. 임기가 끝난 대통령이 탄핵의 심판대에 오르질 않나, 떠난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이 온갖 루머에 시달리고, 그야말로 대통령의 수난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들의 경외심은 미국 사우스 다코타주 러시모어 산에 새겨져 있는 대통령들의 조각상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은 미국을 빛낸 대통령 4명이다.

초대 대통령으로 위대한 민주국가 탄생을 위해 헌신한 조지 워싱턴,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기안하고 루이지애나 영토를 매입해 국토를 넓힌 토머스 제퍼슨,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승리로 미연방을 살리고 노예해방을 가져온 에이브러햄 링컨,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파나마 운하 구축 등으로 미국의 입지를 세계적으로 올린 시어도어 루즈벨트 등이다.

14년에 걸쳐 만든 이 조각상은 미대통령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한 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이제는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그런 분위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다. 임기를 마친 대통령이나 새로 시작하는 대통령에 대한 경외심은 온데간데 없고 오히려 잡음만 끊이지 않고 있다.

취임식에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생활에 들어갔고, 임기를 마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플로리다주 팜비치 카운티에서 집무실을 마련해 자신과 관련된 업무를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트럼프에 대한 2차 탄핵 소추안은 최종 기각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상원에서 진행된 마지막 일정에서 ‘내란 선동’ 혐의에 관한 탄핵안 표결 결과 유죄 57, 무죄 43표로 부결된 것이다.

트럼프에 대한 탄핵 재판은 한국에서 몇 년 전 그 과정을 겪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연상시킨다. ‘대통령의 수난‘ 하면 한국만큼 더 심한 나라가 있을까. 한국은 대통령 대부분이 처음에는 성대하게 출발하지만, 임기 말이나 퇴임 후에 가면 거의 모두 비참하게 끝이 난다.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불행한 종말은 본인의 실책도 있지만 정치적 양극화에 의한 결과도 없지 않다. 4.19 혁명 한주 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사임으로 12년 장기집권이 막을 내렸으며, 윤보선 전 대통령은 5.16 군사정변으로 중도 하차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측근의 총탄에 시해됐으며, 최규하 전 대통령은 신군부 집권으로 8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민주화 이후에도 전직 대통령의 수난사는 계속 이어졌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내란죄와 뇌물죄로 차례로 구속되었다. 또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아들들의 비리 연루 혐의로 구속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도 비리 혐의로 현재 구금 상태다.

한국같이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적 양극화는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정치 구도라고 한다. 이제는 세계 제1의 정치 선진국 미국에서도 후진국과 유사한 정치 양극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전임과 신임 대통령간에 오고 가야 할 어떤 예우나 예절 같은 것도 잘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경외심도 예전과 같지 않다. 이 사태를 보면서 러시모어 산에 새겨진 대통령들은 과연 어떤 마음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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