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나 철도, 발전소 건설과 같은 공익사업을 추진하려면 정부가 됐든 민간기업이 됐든 사업 주체는 개인의 토지나 건물 등을 소유주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수용할 필요성이 생긴다.
이와 관련 미국 수정헌법 제 5조에 ‘사유재산권은 정당한 보상 없이는 공공의 용도로 수용되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돼있다.
공용수용의 가장 핵심은 헌법 조항에 명시된 그대로 과연 무엇이 ‘공공의 용도’이며, 어느 정도의 수준이 ‘정당한 보상’인지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판단하는 것인데 이것은 법원이 해야 할 몫이다.
특히 공용수용은 ‘공공의 용도’가 분명한 공익사업뿐 아니라 도시개발에도 폭넓게 적용되어 많은 논란이 있는데 이번에는 이에 대해 조명해본다.
도시개발 문제로 대법원까지 법적 논쟁이 되었던 첫 사례는 1954년에 있었던 버먼 대 파커(Berman v. Parker) 사건이다. 미국 연방의회는 1945년, 워싱턴 D.C.의 낙후 지역을 재개발키로 결정하고 사업을 추진할 주체로 D.C. 토지재개발청(D.C. Redevelopment Land Agency)을 설립했다.
토지재개발청은 사전 조사를 통해 워싱턴 D.C. 남서쪽 지역 주택가 64.3%가 보수 불가능할 정도로 노후도가 심각하다고 결론짓고 재개발에 착수했다.
버먼은 당시 이 지역에서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아직 멀쩡한 자신의 건물을 지방정부가 강제로 수용하여 부동산 재개발 사업자에게 주는 것은 ‘한 사업가의 이익을 다른 사업가에게 주는 것’일 뿐 공공의 용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수용에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버먼처럼 일일이 개인 사정들을 다 들어주다 보면 전체적으로 사업추진이 요원하다고 판단하고 8-0 만장일치로 정부 편을 들어주었다. 주민의 안전과 편익, 도시미관 등이 공익의 가치라고 본 것이다.
대법원의 이 같은 결정은, 보스턴 시의 경우 웨스트엔드 빈민가에 살던 약 2만 명의 이민자들을 이주시키고 대규모 재개발을 통해 현대식 빌딩 숲으로 바꾸는 데 성공하는 등 미국 전역에 재개발 열풍을 몰고 와 낙후된 구도심을 오늘의 도시 모습으로 바꾸는 데 크게 일조했다.
그러다 2005년 켈로 대 뉴런던 시(Kelo v. City of New London) 사건으로 공용수용 문제가 또 한번 도마 위에 올라온다. 커네티컷주의 뉴런던 시 테임즈 강가 작은 집에서 남편과 함께 오랫동안 살던 수젯 켈로(Susette Kelo)는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통지를 받게 된다.
다름 아니라 거대 제약회사인 화이자가 자기 동네를 재개발하여 화이자 사옥과 그에 따르는 부대시설을 짓기로 한다는 것이었다.
뉴런던 시 당국은, 켈로가 살던 동네는 낙후지역이라 도시 재생 사업이 필수적인 데다 대형 제약회사를 유치하게 되면 일자리 창출과 시의 세수증대에도 크게 기여한다며 켈로의 집에 대한 공용수용을 승인했다.
켈로를 비롯한 주택소유주 몇 명은 만족스럽지 못한 보상가에 반발하며 소송을 불사했지만 결국 대법원은 고용창출 문제와 세수증대는 공익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강제이주를 명령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화이자는 기업 인수합병에 따라 이미 완공된 뉴런던 시 사옥을 떠나 다른 도시로 이전하였기 때문에 당초 기대했던 일자리 창출과 세수증대에 별로 기여하지 못하였고, 재개발 사업 또한 부동산 시행업자의 자금난으로 계획대로 진척이 되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황량한 공터로 남아 있다.
어차피 개발을 통해 이익이 남는 장사라면 가만히 두어도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할 텐데 이처럼 행정기관이 나서 민간에게 이익을 보장해주는 게 과연 ‘공공의 용도’로 볼 수 있는지, 아울러 시세보다 더 많은 돈을 준다면 당연히 팔고 나갔을 가격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에서의 주택 가격이라고 본다면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공용수용 보상가를 ‘정당한 보상’이라고 볼 수 있는지, 도심재개발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회자되는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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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락/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