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최고경영자(CEO)직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아마존에는 이사회 의장으로만 남고, 앞으로는 그의 또 다른 사업인 우주탐사기업 ‘블루 오리진’(Blue Origin)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테크업계 거물인 두 억만장자의 우주전쟁이 본격 점화된 느낌이다. ‘스페이스X’를 가진 테슬라 대표 일론 머스크와의 한판 힘겨루기가 시작된 것이다.
머스크(49)와 베조스(57)는 숙적이다. 한때는 친분을 교류한 적도 있지만 민간 우주개발사업에 뛰어들면서 사이가 틀어져 경쟁자가 되었다. 두 기업의 핵심 사업(우주탐사, 위성인터넷, 자율주행차)이 겹치는 것도 필연적인 충돌과 경쟁을 불렀다.
우주 사업은 베조스가 먼저 시작했지만 위성인터넷과 자율주행차는 머스크가 먼저였다. 2015년 머스크는 ‘스타링크’라는 프로젝트를 출범했다. 수만개의 인터넷 위성을 지구궤도에 띄워 인터넷에 접속이 어려운 오지 사람들까지 수십억 명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사업이다.
그런데 베조스도 2019년 같은 목표의 위성 프로젝트 ‘카이퍼’를 시작했다. 그리고 2020년에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죽스(Zoox)까지 인수하자 둘 사이의 악감정은 노골화했다. 아마존으로서는 오랫동안 절실하던 배송문제의 해결을 위한 사업 확장의 일부였지만, 머스크는 베조스를 ‘카피캣’(따라쟁이)라고 조롱하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둘다 아이큐가 150이 넘는 천재 기업가들이지만 머스크와 베조스는 성격과 스타일, 기업운영 면에서 판이하게 다르다. 쇼맨십이 강하고 기행을 즐기는 ‘괴짜’ 머스크는 트위터 팔로워가 4,500만명이 넘고 인스타그램은 800여만명이 팔로우한다. 반면 대중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베조스는 소셜미디어를 즐겨 사용하지 않고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도합 400만명에 그친다.
두 사람은 보유재산에서도 세계 1, 2위를 다툰다. 지난 3년 동안은 베조스가 세계최고 부자였는데 바로 한달전 테슬라의 주가폭등으로 머스크가 1위로 올라섰다. 1월초 현재 머스크의 순자산은 1,850억달러, 베조스는 1,840억달러다.
우주벤처기업을 처음 세운 것은 베조스였다. 텍사스 오지를 야금야금 사들여 로켓회사를 건설한 그는 2000년 ‘블루 오리진’을 조용히 창설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세계최고의 민간 우주기업으로 올라선 곳은 2002년 출범한 머스크의 ‘스페이스X’다.
지난해 민간기업 최초로 유인우주선 ‘크루 드래건’ 발사에 성공한 스페이스X는 다양한 국가로부터 로켓발사 수주를 받고 있고, NASA도 국제우주정거장에 보급선을 보낼 때 스페이스X를 이용하고 있다. 바로 최근에도 스페이스X는 NASA 우주망원경 스피어X의 2024년 발사 프로젝트를 따냈다.
그러는 동안 베조스의 ‘블루 오리진’은 아직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스페이스X에 뒤진 기술력을 따라잡기 위해 베조스는 매년 아마존 주식을 팔아 10억 달러씩 블루오리진에 계속 쏟아 붓고 있다. 그리고 5년 전부터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현재로서는 머스크가 한발 앞서 있지만 업계에서는 두고 봐야한다는 분위기다. 한 인사이더는 “베조스는 떠벌이가 아니다. 그가 마음먹고 달려들면 게임이 달라진다. 그는 돈을 벌 줄 아는 비즈니스맨이다”라고 말했다.
블루 오리진의 문장(紋章)에는 지구를 딛고 선 두 마리의 거북이가 모래시계를 안고 우주를 쳐다보는 그림 아래 회사의 모토가 라틴어(‘Gradatim ferociter’)로 쓰여있다. ‘한걸음 한걸음, 맹렬하게’(step by step, ferociously)란 뜻, 토끼를 따라잡는 거북이가 되겠다는 뜻이다.
한편 두 사람의 우주탐사 목적지는 다르다. 머스크는 2050년까지 화성으로 100만명을 실어날라 식민지를 건설하는 꿈을 꾸고 있다. 이를 황당하고 비현실적이라고 비웃는 베조스는 달에 인간을 정착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블루 오리진이 록히드 마틴, 노스롭 그루먼과 함께 ‘내셔널 팀’을 이뤄 NASA의 2024년 달 유인탐사 프로젝트 ‘아르테미스’에 참여하는 것은 어찌 보면 스페이스X보다 실제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라 볼 수도 있다.
머스크와 베조스가 우주 사업에 집착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인간의 환경파괴로 지구는 앞으로 거주가 불가능해지므로 반드시 우주로 나가야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성공한 사업가들로서 우주가 “돈이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위성 인터넷 통신망 구축이 그 하나로, 이제 시작단계인 이 사업은 매출 잠재력이 연간 수백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 한편 로켓을 쏘아 올리는 사업은 한 번 발사에 평균 8,000만달러의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포브스는 계산한다. 스페이스X가 따낸 NASA 우주망원경 발사 프로젝트의 수주계약 규모가 9,880만달러에 달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돈벌이나 개인적 야망에 상관없이 두 사람의 ‘우주굴기’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진일보가 되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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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