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MINARI) 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작품 하나로 미국 영화협회 및 각종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 작품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앙상블상 등 60관왕으로 기록을 세우더니 드디어 3일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지난 해 아카데미상 4관왕에 오른 ‘기생충’ 의 뒤를 이어 올 4월말에 열릴 아카데미상 수상 기대감을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한국 이민자의 미국 정착기를 다룬 ‘미나리’ 가 작품상이 아닌 외국어영화상 심사대상으로 분류된 것은 골드 글로브 상을 주관하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의 ‘영화 대화의 50%이상이 영어여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그래서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인 바 있지만 미국영화사 브래드 피트의 ‘플랜B’ 가 제작하고 한국계 미국인 감독 정이삭과 배우 스티브 연을 비롯 한국 배우들이 출연한다.
‘미나리’의 주인공 제이컵 (스티븐 연 분), 모니카(한예리 분)부부는 캘리포니아의 도시생활에서 실패하자 1980년대 아칸소 주 시골로 들어가 트레일러 집에 살며 농장을 개척한다.
이민 초창기 신분미비자들이 영주권을 받기위해 수년간 병아리 감별사로 일했던 것처럼 제이컵은 병아리 감별사로 일했고 한국 이민자들이 많이 온다는 것에 착안, 한국 야채 무 배추 등을 재배하는데 불철주야 노력한다.
외동딸의 부탁으로 손자, 손녀를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온 할머니 순자( 윤여정 분)는 보통 할머니처럼 요리나 쿠키를 구워주지 않아 불만을 사지만 손자와의 궁합이 좋다. 미나리가 잘 자랄 습지를 찾아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을 뿌리는 할머니, 그러다가 중풍이 오고 사고가 나고... 거실 바닥에 지쳐서 잠든 네 가족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할머니 윤여정,
실제로 배우 윤여정이 젊은 시절에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아이들을 키우면서 살아낸 75년 삶에 대한 애환, 그것을 모두 삭이고 걸러 승화시킨 그 표정, 원래 인생이란 슬픈 것, 평생의 삶을 관통한, 바로 그 표정 하나가 여우조연상 감이구나 싶다.
물, 기후, 흙 삼박자가 맞은 장소에 씨를 뿌려 풍성히 자란 미나리밭은 아메리칸 드림의 희망이고 미래다.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이민의 꿈을 키우는 바로 이민 1세의 모습이다.
오래 전, 뉴욕에 처음 와서 한국 농장이 있다는 말이 신기했었다. 바로 노인들이 여가로 배추와 무를 기르던 상록농장이었다. 얼마 후 본격적인 한국 농장이 뉴욕과 뉴저지 인근에서 몇 몇 한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중 중부 뉴저지 지역의 600에이커 땅에 사과, 배, 등 한국과일과 야채, 곡식을 대량생산하는 한 농장이 있다. 농장주는 처음 뉴욕 업스테이트에 한국배를 심었다가 추운 날씨에 배나무가 얼어 죽자 따스한 남쪽으로 이사를 갔다.
농작물이 자꾸 말라 떨어지면서 죽어나가는 풍토병도 생겼다. 당시 중학생이던 아들을 영어통역으로 앞세우고 풍토병 세미나에서 예방책을 배우며 농장 환경을 개선해 나갔다. 지금은 성공하여 미 전역을 비롯 캐나다로도 판매망이 뻗어있지만 처음 농작물은 수확했지만 배급망이 막연하자 배 피킹, 사과 피킹 행사 아이디어도 냈었다.
이 농장주만 그러랴, 우리 주위의 한인 이민사는 영화 이상으로 치열하다. 가게에 도둑이 들고 강도의 총에 맞아 부상을 입기도 하고, 여러 번 업종을 바꿔도 자꾸 실패하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타주로 이사를 가기도 했다, 사는 것이 힘들다보니 마음이 떠나고 결국 이혼을 하는 등 굴곡진 가정사도 만만찮다.
이 영화는 소리치지 않는다. 분노하지 않는다, 실패가 거듭되어도 어떻게든지 자기 힘으로 이루려한다. 마치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미나리처럼. ‘ 우리는 이렇게 살아냈다’ 는 것을 2세들에게 보여준다. 이 영화 한 편이 한인 이민역사를 정리한 느낌이다.
최근, 한국 마트에서 미나리를 찾기는 어렵다. 어쩌다가 나오지만 금방 없어진다. 3~4월 제철에는 쌉싸름하고 아삭한 미나리 초무침을 먹고 싶다. 머잖아 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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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