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와 부자가 생겨난 것은 문명 이후라는 것이 정설이다. 수렵과 채취로 삶을 유지하던 선사 시대에는 하루 벌어 하루 먹기에 바빴고 부의 축적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농업과 목축이 시작되고 곡식을 수확해 쌓아놓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더 많은 땅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구분이 생겨났다.
빈부 격차에 대한 불만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일찍 기술 혁신을 받아들인 소수의 상공인들은 그전까지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부를 쌓는데 성공했다.
자본주의가 부의 창출에 효율적이라는 사실은 비판자들도 인정했다. 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주와는 역사적으로 매우 혁명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들은 이집트 피라미드나 로마의 수로, 고딕 성당을 뛰어넘는 경이로운 업적을 이룩했다… 그 전 세기의 누가 그런 생산력이 사회적 노동 안에 잠자고 있으리라 상상이나 했겠는가”라고 적었다.
반면 자본가들의 공장에서 일해야 했던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병들고 쓰러졌지만 이들의 생활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사회주의자들을 비롯한 개혁가들이 들고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노동자들의 정치적 발언권이 세지면서 임금은 오르고 대량 생산의 결과 생필품 가격은 내려갔다. 피터 린더트와 제프리 윌리엄슨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781년부터 1819년까지 거의 오르지 않던 영국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1819년부터 1851년까지 2배로 뛴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와서 영국 노동자의 생활 형편이 200년 전보다 나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생산성 향상은 필연적으로 빈부 격차를 증가시킨다. 부 창출의 원동력은 기술 혁신인데 그 신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소수가 새로운 부를 독점하기 때문이다. 이 부가 사회 전체로 퍼지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신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는데 일부 극소수가 거만의 부를 축적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더군다나 대불황으로 실업자가 속출하고 수많은 사람이 집을 뺏기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 결과 일어난 것이 2008년의 ‘월가 점령 사태’(Occupy Wall Street)와 ‘티 파티 운동’이다. 한쪽은 좌파, 다른 쪽은 우파들이 주축이 된 운동이지만 기존 체제에 대한 불만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뿌리가 같다.
작년 코로나 사태로 또 다시 미국이 최악의 불황을 겪으면서 비슷한 움직임이 다시 일고 있다. 소위 ‘서학 개미’로 불리는 소액 투자가들의 반란이 그것이다. 이들은 ‘로빈후드’라는 온라인 브로커 앱을 통해 장래가 어두울 것으로 전망된 ‘게임 스탑’ 주식을 대량 매입함으로써 이 주식을 공매도 해 돈을 벌려던 월가의 헤지 펀드가 백기를 들게 만들었다.
공매도란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주식을 빌려서 판 후 나중에 가격이 내려가면 싸게 사 되돌려 주는 방식으로 돈을 버는 투자 행위를 말한다. 이 방식은 일반 투자가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월가 전문가 사이에서는 흔히 쓰이는 기법이다. 이 때문에 이 방식 자체가 착한 소시민과 탐욕스런 월가를 구분짓는 상징처럼 돼 버렸다. 한국에서는 잠정적으로 금지된 공매도를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공매도는 성장은 그만 두고 생존 가능성조차 희박한 회사 주식이 일부 투자가들의 근거없는 낙관론으로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을 막는 중요한 순기능을 하고 있다. 먼저 주식을 사고 나중에 파는 것은 되고 먼저 팔고 나중에 사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은 자유 시장 경제 원리에 어긋난다.
소액 투자가들의 광기에 놀란 ‘로빈후드’가 빚을 내 투자하는 마진 요건을 강화한다고 발표하자 ‘게임 스탑’ 주식은 28일 44% 폭락했다. 그러나 극우의 선봉 테드 크루즈 연방 상원의원과 극좌의 대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연방 하원의원이 이를 조사한다고 나오자 ‘로빈후드’는 다시 완화했으며 이에 따라 이 주식은 29일 70% 폭등했다.
‘게임 스탑’은 이제는 한물간 게임기 컨소울과 카트리지를 주로 팔던 회사로 매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언제 상황이 호전될 지 알 수 없는 형편이다. 월가에 대한 일반인들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헤지 펀드를 혼내 주기 위해 이런 주식에 개미들이 몰려든다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 더 늦기 전 이 어리석은 게임을 그만둘 것을 강력히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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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