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ex Submariner. 인생에서 잠수 타는 시간은 잠시로 충분하며 정지되어 있으면 침몰한다.
앞으로 할 이야기들은 실화이며, 또한 사랑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남녀 간의 그런 달캉달캉한 이야기는 기대 안하시기 바란다. 이 이야기들은 남자이기에 언제, 어디선가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그래서 이제야 남자라고 혼자서 묵묵히 걸을 수 있는, 그런 위치에 다다른 남자들에게 바치는 사랑의 오마주(Homage)다.
---------------------------------------------------------------------------------------
# 당신은 지성인이며 리더다
미국 정치인 또는 다민족 지도자들과 접할 때 나는 한인 커뮤니티에는 여러 일간지가 있다고 자랑한다. 그들은 한인들의 공동체 의식에 놀라며 우리의 구독 열에 고무된다.
한인사회보다 이민 역사가 깊고 규모가 보다 큰 타 이민사회에서는 단 하나의 지역 일간지도 발행 못하고 있다. 사업관계로 스페니쉬, 중국, 일본 하다못해 러시안 언론사까지 관계하고 있지만 모두 주간지나 월간지뿐이다.
일간지는 소속 커뮤니티의 저력을 보여준다. 따라서 역사 있는 한국일보에 감사하며 그 힘의 바탕은 독자 여러분이다. 보내주신 이메일들을 참조하면 ‘시간여행’ 칼럼을 애독하시는 독자 분들은 대다수 중장년 나이이며 낭만주의자이고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지성인들이다.
따라서 당신은 이 사회의 리더다. 그러나 주위에는 중년의 나이에 한순간 뼈아픈 실수로 자신의 자리를 이탈해 방황하는 남자들이 있다. 그 이야기를 하겠다.
# DC 경찰국 살인과 과장의 악수
남자는 손으로 말한다. 추상적인 의미로는 손에 거머쥔 권력이나 재력이지만 남자의 두 손은 그의 경력과 인간됨을 대변한다. 악수를 하면서 느낄 수 있는 남자의 손맛이 그런 것이다.
최악은 너무 무기력하거나 김빠진 또는 축축한 악수다. 그렇다고 너무 힘주어 하는 악수는 혐오감을 준다.
1990년, 경사 진급과 동시에 경찰의 꽃인 본청 살인과(Homicide Division)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다. 과장(Lieutenant)은 큰 덩치에 생김새도 우락부락한 형사통이었다. 첫 악수에서 손을 거머쥐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과장은 큰손에 손아귀 힘이 엄청났고 쥐어짜는(vice-grip) 동안 그는 부동의 자세였다.
나는 몸을 비틀거나 고통을 표현하지 않았다. 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1분간의 고역스러운 악수에 손에서 쥐가 났다. 주위에 서있던 초면의 계장 3명은 이미 내가 손을 내밀어 과장과 악수를 청하는 순간 그 후 벌어질 일들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 특이했던 과장은 남녀 고하 없이 누구하고나 그런 식으로 악수를 했다. 기선을 제압하고자 하는 의도 같았다. 대다수 사람들은 손을 황급히 빼거나 항복을 선언한다. 과장은 내 손가락 관절을 으깨듯 팔뚝에 힘을 더 주었다.
나는 어금니를 물고 돌부처 마냥 서있었다. 결국 그는 손아귀의 힘을 빼고 ‘씩’ 웃으며 왼손으로 내 어깨를 치면서 동료 계장들을 소개했다. 그중 한명이 “the record is 2 min. and you almost made it(기록은 2분인데 너 거의 해냈어)”라고 말했다.
살인과 과장이란 자리는 보통 자리가 아니다. 그는 해병 월남 참전용사 출신이며 그때 이미 본청에서는 전설적 인물이었는데 살인 용의자와 악수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상상이 가실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운동으로 단련된 몸, 사람 잡는 악수의 달인이던 과장은 뜻밖에도 5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극심한 일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병으로 허무하게 사망하고 말았다. 남자 나이 사오십에 예고 없이 운명을 달리하는 경우를 보았다. 자기 관리가 중요한 나이다.
# “10만불, 쓸 돈이나 되냐?”
건강 다음으로 남자에게 찾아오는 위기는 사회적 지위 하락이다. 20대와 30대 때 실수들은 그나마 재활의 시간이 있지만 40대와 50대는 한칼에 인생 끝나는 수가 있음을 체험했다.
나는 40대에 직장에서 낙마 후 사업을 기반으로 재활을 도모했다. 50대는 사업의 다양화로 기업 매출을 올리는 동시에 늦깎이 학업 성취를 이루었던 시기다. 60대에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새 계획의 일부분이다. 90년대 초 유명 은행의 부장으로 잘나가던 집안 형님이 있었다. 그는 한국은행에서 은퇴하신 부친의 배경도 있었지만 젊은 나이에 승진을 승승장구 했기에 모두 그에 거는 기대가 컸다.
가족들과 이곳에 여행 왔을 당시 50대 초반이었던 그는 분명 잘나갔다. 저녁식사 중 그가 말했다.
“내가 다음 여행에는 십만 불 가지고 올 수 있는데 쓸 돈이나 되냐?” 당시 십만 불이면 타운 하우스 가격이었다.
“당연하죠.” 하고 대답은 했지만 은행의 부장 되시는 분이 그런 말씀하시는 것이 이상했고 부장이라도 월급쟁이 아닌가? 쉽게 말할 액수가 아니어서 걱정되었다.
사오십 대에 성공하면 오만이 생기고 판단력이 흐려지며 들려주는 조언을 경청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어느 날 그의 직장에 국제전화를 하니 여비서가 머뭇거리며 “아~ 부장님 그만 두셨는데요….” 하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했다.
예상하셨겠지만 그는 비리 대출에 연루되어 하루아침에 천직 같은 직장을 그만 두고 두 번 다시 미국에 들어오지 못했고 택시를 몰며 어두운 인생을 살다 갔다. 하루하루가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이 아니었나 싶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 누굴 원망 말고 학대 말아라
나는 사십 줄에 직장에서 퇴출 되었고 사업의 쓴맛도 보았고 이혼 경력도 있다. 그 경험들은 아물지 않는 상처에 굵은 소금 뿌리듯 아팠다.
술집 한구석에 홀로 앉아 흘러나오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I sometimes wish I’d never been born at all (차라리 태어나지나 말 것을)” 절규하는 듯한 가사 한 구절에 가슴은 비고 갈 곳을 잃은 채 방황하기도 했다.
사오십 줄의 남자가 힘든 이유는 책임과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한창 일하고 무엇인가 성과를 보여야 할 나이인데 한 겨울 꺾어진 나뭇가지가 되어 싸라기눈 맞는 신세로 전락하면 사람 마음 처참해진다.
하지만 판단력을 손아귀에서 놓지 않고, 삶을 낭비하지 않고, 절망의 늪에 오래 머물지 말아야한다. 하루 벌이 노가다도 좋고 친구를 찾아가서 기술 배우는 것도 좋다. 방구석에 처박혀 있지 말고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누구 원망하지 말고, 자기 학대하지 말고, 슬퍼하지도 말아라. 인생이 꼬이면 가까운 식구와 친구들을 멀리하게 된다. 그것이 본능이다. 과거의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것이 싫고, 지인들이 부담스럽고, 대화에서는 의도치 않은 말이 나와 곤혹스럽다.
나의 경우 세탁협회에 적극 참석하여 봉사하며 자신의 장단점들을 재발견하고 보완하려 노력했다. 사람을 기피하기보다 찾아 나섰다. 사회에서 내 위치와 존재감을 찾고자 노력했다. 나에게 봉사 활동이란 우리 사회에 대한 참회와 속죄의 의미도 있었다. 재기에는 왕도가 없다. 주위 시선에서 해방되고 스스로에게 가하는 억압의 멍에를 풀고 진취적으로 살아야한다.
나에게 “좀 조용히 살아라.” “자숙해라.” “너 때문에 쪽 팔린다.” 하고 말하시던 분들이 있었다. 그렇다. 당해 봐야만 그리고 경험해 보아야만 명암이 보인다. 당신의 삶이기에 마지막 퍼팅까지, 마지막 아리아가 가슴에 울려 퍼질 때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분명 해답은 있다.
# 내 손이 제일 섹시하다는 와이프
내가 힘들었던 시간에 와이프는 내 손이 제일 섹시하다는 말을 자주하며 내 속을 풀어주고 용기를 주었다. 아마도 열심히 일하던 남편 손이 자랑스러웠던 모양이다.
40대 초반, 경위 진급 기념으로 구입했던 잠수함용 시계(Submariner)는 한때 잘 나가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낙마의 쓴 추억이 있어 나보다 와이프가 차고 다닌다. 재미있는 점은 잠수함이란 눈에 보이지 않고 조용히 수중에 있을 때 가장 위력을 과시한다는 사실이다. 그와 같이 남성의 진정한 힘이란 표출되지 않은 잠재력에 있고 언제나 재기할 수 있는 가능성에 있다. 우리 모두 이 사회의 리더다. 파이팅!
<다음에 계속>
글·사진/ Jeff Ahn
(jahn8118@gmail.com)
<
Jeff 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