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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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한밤중에

2021-02-01 (월) 김자원/뉴욕불교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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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가 가고 새해가 왔다 해도 달라진 것이 없다. 잠시 외출했다 현관문 들어서는 것만큼의 의미가 있을까? 인원제한. 거리두기. 행동반경과 시간관념, 만남 등의 틀이 깨진 것 여전하다. 짜여진 스케줄 안에서 움직이다 튕겨져 나왔다. 한꺼번에 와준 시간.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느린 움직임, 섬세하게 살피는 계기가 된다. 나름 괜찮다.

한밤중에 일어나 달을 만난다. 달빛 드리운 바닥의 고즈넉함이 오래 그 자리에 서 있게 한다. 양 팔을 감싸고 달빛을 응시하는 마음이 설렌다. 오롯한 공간의 무한정한 고요가 연회색빛 베일 되어 나를 감싸주고 있다.

시간의 흐름이 멈춘듯한 생각의 모퉁이에 ‘진실’의 순간들이 스쳐지나간다. 무표정 얼굴에 드리운 고뇌. 무심히 바라본 눈빛에 깃든 깊은 정, 잘 해봐 라는 응원의 미소, 감싸는 손길의 위로. 달빛의 아스라함이 어딘가 팽개쳐 있던 기억들을 거둬들여 말없이 많은 것 전달해주고 있다.


힘들었던 순간들을 견뎌낸 것은 무언으로 쏟아준 인연들의 정스런 염원이었음을. 달빛의 고요와 한적함이 마련한 자리에 고스란히 떠올랐다. 감탄하는 마음이 뜨겁다. 많은 생각으로 사리판단 하며 실익을 따지던 시간엔 잊혔던 것들이다.

이익과 성공이 우선 되는 세상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잔잔한 사람의 감성과 표정 느낌 등이 선명하게 보여 가슴뭉클한 감동을 주고있다. 잊혀졌고 한편 숨기고 싶은 실수들도 뚜렷하게 볼 수 있어 깊게 참회 할 수 있는 마음공간이 마련됐다.

- 법의 성품은 본래 텅 비고 고요하여 취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나니 텅 비어 고요한 성품이 곧 진리라 사량으로는 얻을 수 없다 - 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법의 성품은 본래 텅 비고 고요하여 취할 수도 볼 수도 없다는 진리의 실체가 그러한 것임을 알아차린다면, 알아차린 이들의 세상은 환하게 밝으리라.

늘 우리의 사량분별로 모든 것을 가늠하고 이름 짓고 뭔가 만들려는 것을 지성이라 하고 학식이라 한다. 진리마저도 그 규격에 넣고 본다는 것 지식의 한계가 아닐까 한다. 그렇게 각자 다른 생각 때문에 빚어진 세상의 갈등, 불협화음 등등이 고통의 원인이다.

텅 비어 고요한 성품을 한번이라도 맛 본 이 텅 빈 고요. 취할 수도 볼 수도 없는 우주만큼 크고 넓은 진리의 세계. 우리의 생각이나 성품마저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번뇌에 물들지 않으리라는 것 짐작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에고의 추한 모습 온 세상에 알린 것 역시, 착각과 자신을 알지 못한 이의 추태가 아니고 무엇일까? 천만군대를 정복하는 이보다 자신의 한마음 다스리는 이가 더 강하다는 얘기가 있다.

<시 ‘11월’ > 박용하, 한그루의 나무에서/ 만 그루 잎이 살았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인은 나무의 위대함을 아니 인간과 나무의 다름을 깔끔하게 시어로 알려 주었다. 인간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지만, 인간에게는 또 다른 일이 있다. 무한한 자비의 몸짓과 언어는 세상을 미소짓는 장소로 만든다.

배려와 사랑의 어울림은 인간의 가치와 품격을 논할 수 있게 만든다. 우리 스스로 그러한 사람이 된다면 멋진 일이다. 세상에 살다간 흔적도 아름다울 것이다.

<김자원/뉴욕불교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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