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팬데믹이 불러온 바이러스, 불평등

2021-01-29 (금)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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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아기돼지 삼형제’가 가끔 떠오른다. 같은 위기상황에서도 어느 집은 무너지고 어느 집은 멀쩡한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팬데믹 재난상황을 들여다보게 하기 때문이다. 영미권 전래동화인 ‘아기돼지 ~’는 돼지형제들이 자라서 엄마 집을 떠나 제각기 집을 지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첫째는 짚을 엮어 짓고, 둘째는 나뭇가지들을 모아 짓고, 셋째는 벽돌로 튼튼하게 짓는다.

형제들이 각자의 집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위기상황이 발생한다. 배고픈 늑대가 고소한 돼지냄새를 맡은 것이다. 돼지들의 집을 차례로 찾아간 늑대는 첫째의 집을 후~ 입 바람으로 날려버리고, 둘째의 집 역시 날려버린다. 하지만 벽돌집은 끝내 날려버리지 못한다. 삼형제는 똘똘 뭉쳐 늑대를 골탕 먹이고 혼이 난 늑대는 멀리 달아나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한다. ‘돼지 삼형제, 만세!’ 이야기이다.

우리의 삶이 동화 같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돼지형제의 집이 각자의 선택인 반면 현실에서 집은 선택이 아니다. 짚단 집(빈곤층) 나무집(중산층) 벽돌집(부유층)은 재정능력이 결정할 뿐이다.


팬데믹이 우리의 삶을 점령한 지 근 1년, ‘집’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칩거명령으로, 재택근무로, 주 7일 하루 24시간 몸담는 곳이 되면서 ‘홈 스윗 홈’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다. 더 쾌적한 공간을 위한 주택수리 붐이 일고, 더 넓고 편안한 집을 찾는 수요가 늘었다. 낮은 모기지 이자율이 한몫 하면서, 주택시장은 이 불경기에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반면 이 이상열기의 반대편에는 짚단 집이든 나무집이든 ‘홈’을 잃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지난 25일 발표된 무디스 애널리틱스 보고서에 따르면 1월 현재 미국에서 집세를 못 내는 세입자는 1,000만 명에 달한다. 세입자 5명 중 한명 꼴, 딸린 식구까지 합치면 수천만 명이 당장 길거리로 내쫓길 상황이다.

팬데믹이라는 똑같은 재난상황을 맞고 있는데, 그 속에서 만인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28일 공개된 연방 데이터에 의하면 지난해 미국경제는 3.5% 위축, 2차 대전 이후 최악이었다. 중소업체들이 줄줄이 문 닫고, 일자리가 대거 사라지면서 2020년 하반기에만 800만명 이상이 빈곤선 아래로 떨어졌다. 취약계층의 삶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부자들은 지금 잔치 분위기이다. 진보 싱크탱크가 26일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 억만장자들의 재산은 지난해 3월 팬데믹 이후 거의 40% 늘었다. 억만장자 숫자도 46명 더 늘었다. 이들 총 660명 억만장자의 재산을 합치면 4조1천억 달러. 미국인구 하위 50%(1억6,000여만명)가 가진 재산을 모두 합친 것 보다 3분의 2나 더 많다. 부자들의 재산을 늘려준 것은 호황을 맞은 주택시장과 주식시장. 테슬라 주가가 치솟으면서 일론 머스크의 재산은 무려 1,550억 달러가 불어났다.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까. 배가 난파해 수많은 사람들이 물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극소수는 호화유람선 높이 올라 샴페인을 터트리는 형국이다. 미국경제는 K자형으로 회복되고 있다. 빈과 부의 격차가 날로 벌어지면서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가 급속도로 심화하는 유형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양극화가 심해진 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이 24일 발표한 연례 불평등보고서에 의하면 팬데믹 발생 이후 가난한 자들은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부자들은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어느 나라나 공통적이다. 세계적 억만장자들이 팬데믹 이전 수준의 재력을 회복하는 데는 단 9개월이 걸린 반면, 최하위 빈곤층이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데는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옥스팜은 전망했다.

빈부격차가 이렇게 큰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불평등은 바이러스 못지않게 위험하다. 소수 가진 자들의 오만과 대다수 못 가진 자들의 절망은 언젠가는 사회적 폭발을 불러온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부자와 기업들만 챙기는 정책이 아니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는 정책이 필요하다. 지난여름 미국에서 빈곤율이 잠시 감소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연방정부의 경기부양조치 덕분이었다. 이후 빈곤율은 다시 올라갔다.

바이든이 ‘불평등’에 주목하며 제안한 1조9천억 달러 미국구조플랜이 조속하게 의회를 통과하기를 바란다. 1,400달러 체크, 추가 실업수당 등 자잘한 도움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줄이 될 수 있다. 재원마련을 위해 부자증세는 당연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 구약 이사야서(40:4)의 한 구절이다. 높은 자는 낮추고 낮은 자는 높여서 공평한 세상을 이루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그런 사회를 목표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기를 바란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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