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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배 더 조심할 때”

2021-01-28 (목)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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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했던 대로 백신의 보급은 백신의 개발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미국은 백신 개발에 1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일반 국민의 접종까지는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 있겠다는 염려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65세이상 접종시작 통고를 믿고 온라인 예약 봉사를 자원했던 한인타운 시니어센터는 대행 업무를 중단했다. 막상 해보니 사이트 접속이 어려워 신청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LA에 앞서 65세이상 접종을 발표했던 오렌지카운티도 사정은 많이 다르지 않다. 한 신청자는 “등록까지는 할 수 있었으나 예약일정을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전한다.

최우선 대상인 의료진도 백신 접종이 만만치 않다. 병원 시스템에 속해 있지 않은 의료 관계자, 어전트 케어와 클리닉 종사자 등이 특히 그렇다. 병원 직원이 아닌 의료진 접종을 위해 각 병원에 배당된 백신의 10%는 따로 보관할 것을 지시한 주도 있다. 얼마 전에는 치과의와 테크니션, 약사 등 의료관계자들이 건물 밖에 긴 줄을 서서 접종차례를 기다리는 영상이 오렌지카운티에서 보도되기도 했다.


미시건에서는 의사가 개인 승용차로 외딴 병원의 백신 배달에 나서기도 했다. 미시건 미들랜드의 이 의사는 3시간 운전을 해야 하는 140마일 거리의 병원에 백신을 전달하는 일을 닷새에 한 번씩, 여러 주 계속했다. 시간에 맞춰 대기하고 있던 시골 병원 의사와 간호사들은 박수와 환호, 어떤 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백신을 맞이 했다고 한다. “오랜 산고 끝에 갓 낳은 아기를 부모의 손에 넘겨 주는 것 같았다”고 배달의사는 이 순간을 전한다.

의사에게 던져진 첫 질문은 “백신은 어떻게 운반했는가?” 였다. 백신을 옮기려면 영하 20~70도의 초저온 유지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 의사는 백신을 병원 냉동고에서 꺼내자 마자 온도를 모니터 할 수 있는 아이스 박스에 담아 날랐다고 전했지만, 원활한 백신 보급에는 냉동설비부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신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이런 추세면 백신 접종에 몇 년이 걸릴 지 모르겠다. 100일 안에 1억명 접종이 이뤄지도록 연방정부가 더 적극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백신은 더디고, 바이러스는 맹렬하다.

우선 물량부터 턱없이 부족하다. 힘있는 나라들 간에도 백신 확보를 둘러싼 갈등은 곳곳에서 불거져 나오고 있다. 백신 확보의 선두주자인 미국도 일반 냉장온도에서 보관과 유통이 가능하고, 1회 접종만으로 면역력이 형성되는 백신이 보급돼야 문제 해결의 물꼬가 트일 것으로 보인다.

지금 승인여부에 가장 큰 관심이 모이고 있는 백신은 미국 정부가 연구개발비를 지원했던 존슨 & 존슨사 제품이다. 관계당국이 자료 분석에 들어가 다음달 중순 전에 승인여부가 결정되리라고 한다. 영국서는 이미 긴급사용이 승인된 옥스포드 대학과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개발한 백신도 효과 문제만 검증되면 뒤이어 승인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 백신은 제조방법에 따라 몇 종류로 나뉜다. 이 두 가지 백신은 화이저나 모더나 백신과는 달라 유통과 보관이 쉽고, 한 번만 맞으면 면역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던 의료시스템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면서 남가주는 자가 대피령이 풀렸다. 정해진 규정 아래 식당의 야외 영업도 다시 허용됐다. 지난 주를 기점으로 코로나 일일 사망자, 신규 확진자 비율, 입원 환자 수가 일제히 하향세로 돌아선 덕이다.

방역 현장의 의료진들에 따르면 지난 연말과 올초에는 위기의식이 팽배했었다. 나폴레옹 전쟁 때 프랑스 군의관이 처음 체계적으로 도입했다는 프랑스어로 뜨리아쥬(triage)로 불리는 환자 중증분별이 도입되기 직전까지 내몰렸다. 코로나 응급 환자를 병원 기프트 샵에 내려놓고 가버린 구급차도 있었다.

만일 이때 확산 속도가 빠른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까지 동시에 덮쳤더라면 상황은 끔찍할 뻔 했다. 이미 미국의 절반 가까운 주에서 확인된 영국발 변이는 확산력이 종전보다 30~70%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남가주의 방역 당국이 지금도 가장 염려하는 것중 하나가 이 변이 바이러스가 덮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입원이 늘게 되면 병원 시스템은 또 다시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바이러스의 세계에서 변이는 버스의 승객처럼 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변이냐는 것이다. 개발된 백신의 효능을 무력화시키는 ‘백신 탈출’ 정도의 변이라면 최악이다. 새 백신을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이 오기 전에 어둠이 가장 짙다고 한다. 지금이 그런 때로 보인다. 대책은 무엇인가. 2배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필요하다면 마스크도 2개 끼고, 거리도 2배 더 두고, 실내에 함께 있는 시간은 반으로 줄이고-. ‘2배 더 조심’은 이 시점에서 감염병 전문가들이 내놓는 유일한 대책이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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