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해 전 존 뮤어 트레일(John Muir Trail)을 일주간 다녀온 적이 있다. 여섯 밤을 물가에 텐트를 치고 지냈다. 음식 보관하는 철통이 없는 캠핑장에서는 곰 때문에 음식을 나뭇가지에 매달아놔야 했다. 누구 하나 다치거나 낙오자가 생기면 등산 일정에 큰 차질이 생긴다. 경험 있는 동료들은 텐트 치는 일 도와주고, 등산 대열 맨 앞과 뒤를 지키며 험난한 산 속에서 안전을 제일 목표로 서로 횡적인 관계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이것은 마치 목축들을 몰고 다니며 한 몸이 되어 생활하는 유목민의 문화를 철저하게 체험하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기독교의 출발점이 중동지역의 유목민의 문화로부터 시작된다. 유목민은 양떼들을 한 장소에 머물게 하면서 풀을 먹일 수는 없다. 풀이 다시 자랄 때까지 다른 장소로 풀을 찾아나서야 한다. 천막을 쳤다가 다시 걷어 들여 계속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하는 유목민들은 창고를 지어서 곡식을 쌓아둘 수는 없다. 한 장소에 정착하여 먹을 것을 창고에 저장해서 혈육끼리만 나누어 먹는 수직적 위계질서로 이루어지는 농경민의 생활과 달리 다 함께 나누어 먹어야하는 역동적 수평적 공동체의 삶이 기독교의 바탕을 이룬다.
교회공동체는 갑과 을의 수직적 농경민의 관계가 아니라, 갑과 갑이 다 함께 창조적 생성에 참여하는 수평적 유목민의 관계다. 제자들이 예수와 더불어 삶을 이끌어가던 갈릴리공동체는 갑과 갑, 인격과 인격의 관계로 형성된 인류 최초의 민주적 공동체를 의미한다.
인간사회의 관계를 원만히 가꾸어 나가는 기본자세는 갑질과 위계적 관계 구조가 사라진 서로간의 평등과 존엄성에 뿌리내려야한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잘 들을 수 있고, 잘 물을 수 있다. 예수의 공적인 활동은 이러한 존중의 자세에 근거를 두었기 때문에 갈릴리 민중과 한 몸,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시험 위주의 교육 방식과 선생에게 복종을 강조하는 위계적인 학교 문화에서 10여년 교직에 있다가 40여년 전 미국으로 와서 자녀들 초등학교 행사에 여러 번 참석하였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학부형들에게 잘 보이려고 전교사들이 총동원하여 학생들에게 갑질을 하던 나의 과거의 기억을 송두리째 뒤집어놓았다.
모든 행사를 학생들 스스로가 진행하고 선생 한명이 뒤에서 조용히 지도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실수하면 학부형 모두가 박장대소하며 깔깔댄다. 잘 보이려고 훈련받는 대신, 학생 스스로 실수를 통해서 전 행사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창의성과 비판적 토론이 불가능한 노예 교육을 받아온 선생과 학생들은 커다란 배가 기울어지는데도 그대로 앉아있으라는 방송에 복종만 하였다. 스스로 판단하는 대신에, 배 밖으로 뛰쳐나가야한다는 비판적 창의성을 상실한 300여 명의 학생과 선생들이 그대로 수장되었다. 세월호에 대한 반성과 비판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며, 40년이 지난 지금도 만일 복종과 허구적 권위가 학교 안에 그대로 남아있다면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하여 각 교회의 기도 제목이 코로나가 지나가면 익숙해져있던 것과 다시 친숙해지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향에서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받았던 안정감 및 위안과는 단절된 이민자들이 이질적인 지역에서 교회가 일종의 친족 대체물로 성장해 왔지만, 코로나를 겪으면서 기독교 가치들에 대한 제대로 된 논쟁을 더 활발하게 진행할 때가 되었다.
사실 성서의 권위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자기 경전의 역사적 기원에 대해 딱할 정도로 호기심을 갖지 않는다. 제대로 된 평등한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믿음을 통해 질문하고 생각하는 법을 배워나가면 더 아름답게 성장할 것이다. 제왕적 권위를 가지고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시대는 지났다.
존엄과 평등성을 뿌리내리게 하는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열려있는 마음으로 차별 없이 심층토론이 가능한 공동체야말로 서로를 변화시키고 성장하는 아름다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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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익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