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라 해리스가 취임 특별 쇼에서 한 스피치에,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도 용기를 가지고 선을 위해 마음을 합하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뜻을 강조하면서,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할 때, “위 셀 오버컴 (We Shall Overcome)”이라는 영어가 확실하게 귀에 들어 왔다. 영어가 쉬워서 가 아니라, ‘위 셀 오버컴’이란 말을 들으면 저절로 멜로디가 따라 붙을 정도로 우리 귀에 익은 미국 포크 송 제목이기 때문이다.
70년대 존 바에즈가 부른 이 노래를 한국에서 처음 김민기가 부른 이후 통기타 그룹들이 즐겨 불렀다. 미국에서는 반전과 인종차별 운동 때 마다 불리고 있었는데, 미국 것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던 시절이긴 해도 아마도 ‘위 셀 오버컴’에 담긴 메시지가 한국의 민주화에도 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소외되고 차별 받는 층에서 민요처럼 불리던 이 노래를 대중화 시킨 사람이 피트 시거(Pete Seeger)이다.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을 작곡하고 밥 딜런을 키워내는 등 미국 포크 송의 대부로 알려진 피트 시거는, 히피 문화의 대명사이기도 한 우드스탁을 비롯한 허드슨 밸리, 웨체스터 지역과는 각별한 인연을 지니고 있다.
얼마 전 웨체스터의 ‘비컨( Bea con)’으로 와서 인턴으로 일을 하고 있는 지인의 딸로부터 피트 시거라는 이름을 듣게 된 것과, 카멜라 해리스의 입에서 나온 ‘위 셀 오버컴’을 들은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비컨’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살면서 앞날의 꿈을 키워내고 있는 한국인 2세 젊은 여성에게 과연 피트 시거가 어떤 의미로 다가 왔을까. 우리 세대에게 피트 시거는 평화 운동가였으며. 또한, 미국이 다시 파리 환경조약에 가입을 하게 된 지금, 그는 환경문제에 노후의 정열을 받친 환경운동가로 새삼스럽게 다시 떠오른다.
컨템포러리 뮤지엄 ‘디아 비컨(Dia Beacon)’으로 유명해진 ‘비컨’은 1940년대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음악활동을 하던 피트 시거가 옮겨올 때엔 아무런 특징도 없는 공장 지대였다. 허드슨 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단칸방 오두막집을 지은 피트 시거는 아마도 그 때부터 허드슨 강을 사랑했을 것이다.
1960년대, 강물 오염이 극에 달할 무렵, 그는 돛단배를 손수 지어 허드슨 강에 띄우고 강물을 살리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는 뉴욕 주가 강물 오염 방지 법률을 제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아직도 그가 만든 ‘비컨 돛단배 클럽(Beacon Sloop Club)’은 매주 일요일 모임을 가지며 강물 환경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2014년 그가 94세로 세상을 떠나자 이 지역에서는 무엇보다도 허드슨 강을 깨끗하게 해준 그의 공로를 치하했다.
역사 속 어느 때나 인간은 고난을 당했고 또한 인간은 그 고난을 헤쳐내고 승리를 이루어 내곤 했다. 지난 4년을 겪어낸 악몽같은 정치적 혼란과 속수무책이었던 펜데믹도 우리는 ‘위 셀 오버컴’을 외치는 정부와 함께 결국 이겨 낼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도 앞으로 어떠한 고난이 닥쳐오더라도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가 불렀던 “We shall overcome, we shall over come, We shall overcome someday; Oh, deep in my heart, I do believe, We shall overcome someday…를 부르며, 넉넉하게 헤쳐나갈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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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려 한국일보/웨체스터 전 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