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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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속에 취임한 바이든

2021-01-23 (토) 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업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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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세로 사상 최고령인 조 바이든이 조금전 제 46대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모양이다. 트럼프 전임 대통령이 CNN 등과 함께 그렇게 껄끄러워 했던 NBC 공중파 채널을 보니 알링턴 국립묘지에 도착한 바이든 일행이 헌화하기에 앞서 21발의 예포가 발사되고 있다. 펑, 펑… 이어 바이든을 태운 리무진 차량 행렬이 경광등을 켜고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트럼프의 재선을 바랐던 7,500만명의 미국 시민들은 씁쓸한 심경으로 이를 지켜보거나 들로 나가 산책하면서 분을 삭이며 애써 외면하고 있을 것이다. 3만명의 병력이 워싱턴 디씨를 철통 경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국내외 트럼프 지지자들은 마치 취임식장에 무슨 사변이라도 터져서 트럼프 2기 정부가 시작되기라도 할 것처럼 극단적인 상상의 나래를 폈나보던데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멜라니아 여사가 이틀전인 월요일 백악관 고별사를 발표할 때 이미 오늘 취임식 행사 중 특별한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했다고 봐야 옳다.

같은 시각, 테두리 없는 오렌지색의 크고 밝은 정육면체가 점점이 박혀있는 넉넉한 품의 실크 혼방 원피스인 구찌 캬프턴(Caftan)을 맵시나게 입은 멜라니아 여사가 플로리다의 팜비치 국제 비행장에 착륙한 에어포스 원 전용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손을 흔들며 트랩을 내려오고 있다. 반 트럼프 정서의 CNN 등은 미인 퍼스트레이디인 멜라니아의 고별사는 별로 소개하지 않는 대신 사상 최저의 영부인 호감도를 기록한 채 그녀가 떠났다는 기사를 톱으로 올리고 있다.


어쨌든 바이든은 전임 대통령으로부터 영접을 받지 못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돼 백악관에 입성하였다. 미국은 이렇게 극한으로 갈라진 채 앞으로 4년간의 바이든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세계 최고의 위대한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미국이다. 단 1표의 차이로 패배했다고 해도 이를 겸허히 승복해야하는 것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공정하고도 객관적인 선거여야 한다는 것만큼이나 당연하다. 이제 바이든의 취임으로 트럼프가 지난 4년간 추진해왔던 굵직한 정책들은 상당 부분 취임 첫날의 행정 명령으로 무효가 된다고 하니, 쌓았다간 허무는 철부지 연인들의 바닷가 모래성도 아니고 이런 국력의 낭비가 어디 있을까 싶다.

미국이 꾸준한 황소걸음으로 전진하며 내실을 다져도 버거울 판에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갈지자로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미국 최대의 패권 도전국인 중국은 공산당 1당 독재의 전체주의적 효율을 과시하며 무서운 속도로 육박해오고 있다. 미국인들이 이를 그저 태평하게 계속 바라보고 있어야 옳은가.
트럼프 시대의 종언과 함께 미국의 코비드-19 사망자 수는 4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는 ‘69년 8월 뉴욕주 알바니 가는 길 중간에 위치한 ‘맥스 야스거’ 목장에서 개최된 전설적인 우드스탁 록 페스티발에 모인 인산인해의 참가자들 또는 2차 세계대전 중 희생된 미군의 숫자와 비슷한 규모라 한다. 또한 그간 미국인 최대의 사망원인이었던 중풍, 알츠하이머, 당뇨, 독감 및 폐렴 등 5대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더한 것보다도 더 많은 숫자라니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미국 사상 최대의 사망자를 기록한 세기적 사변으로 현재 진행 중인 것이다.

5월 초가 되면 사망자 수는 57만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는데 이쯤 되면 중국에서 발발한 코비드-19 바이러스 방역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참패하고 있다고 봐야 옳다. 지난 한세기 지구촌 유일의 수퍼 파워로 군림해 온 미국은 중국발 방역전쟁에는 실상 얼마나 취약한지, 나라의 몰랐던 현주소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준 지난 1년이었다.

우연히 내생일인 오늘, 갈등 속에 취임한 바이든이 4년의 임기를 성공리에 마치고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남으려면 천신만고 세계 최강 미합중국 대통령이 됐다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성공적인 코로나 방역과 함께 6조 달러대의 대중국 부채와 천문학적인 무역역조에 어찌 대처할 것인지 현명한 대안을 근시일내 제시하고 실천에 옮겨야할 것이다. 아울러, 아무리 밉더라도 트럼프가 했던 정책 중 의미있는 것은 계승해 국력의 낭비를 피하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을 과학적이고도 공정한 선거 체제를 확립해 미국의 민주주의를 반석위에 올려놓아 양극으로 분열된 국민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일이 그의 최우선 과제가 아닐까.

<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업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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