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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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회적 동물

2021-01-22 (금) 장경자 패사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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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늦은 오후, 집 근처에 있는 로즈보울 스타디움 광장을 걷는다. 남편은 한적하고 숲이 우거진 동네 뒷길을 두고 왜 거기까지 가서 걷느냐고 한다. 무더운 여름날엔 확 터진 넓은 광장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산들바람이 땀을 식혀주어 좋고, 싸늘한 겨울에는 뺨을 스쳐가는 차가운 바람이 상쾌해서 좋다. 무엇보다 건강을 생각하며 열심히 걷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함께 걷는 것이 더 좋아서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는 느낌 때문이다.

요즘은 거리 두기에 신경 쓸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걷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특히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인지 광장은 텅 비어있었다. 걷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때가 그립다는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는데, 멀리 광장 한 복판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아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근처까지 가서 보니 중년 남녀가 예쁜 식탁보까지 덮인 작은 테이블을 마주하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옷차림은 정장이었고, 음식은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패스트푸드가 아닌 정식 식사인 것처럼 접시들이 많았다.

특별한 날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식당에 갈 수 없고, 무엇보다도 오랜 집콕에 지쳤으니 야외에 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특별한 날을 기념하고자 이 광장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팬데믹 중에 남에게 폐를 주지도 않고, 이렇게 기발한 장소를 생각해낸 그들이 무척 자유로워보였다. 나는 지나면서 아이디어가 멋지다는 뜻으로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고, 그들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라고 큰 소리로 알려주며 양쪽 엄지손가락을 흔들어 화답했다. 마스크에 가려진 내 미소와 축하한다는 말까지 그들은 느꼈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초기의 일이 생각난다. 로즈보울 광장이 폐쇄되었기 때문에 동네 길을 걷게 되었다. 멀리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보이면 일찌감치 12피트쯤이나 떨어진 거리에서부터 얼굴을 반대방향으로 돌리며 서로 멀리 피해 다녔다. 그 때는 얼굴만 봐도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색하기도 하고, 기분도 찜찜하고, 상대방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전에는 모르는 사람도 길에서 마주치면 ‘하이’라고 인사하던 사회가 아니었던가.

결국 방법을 하나 생각해냈다. 마주 걸어오는 사람과 서로 멀리 비켜가면서 한쪽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이는 것이다. 내편에서 먼저 손을 흔드니, 상대방도 반가운 듯 손을 흔들며 반응을 보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길을 걸을 때면 거의 모두가 손 흔들어주기 인사를 교환하게 되었다. 다들 그 동안 서로 외면하고 다니던 일이 무척 불편했었나 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팬데믹 동안에 우리가 가장 불편해 하는 것도 자유롭게 밖에 다니지 못하고 마음도 몸도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함께 어울려 살지 못하는 세상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우리는 모두 이번 팬데믹으로 충분히 경험했다. 백신은 개발되었지만 얼마 동안은 계속 조심하며 지내야 된다고 한다. 인내하는 남은 시간 동안 상대방을 생각하며 배려하고, 함께 어울려 즐겁게 살아가는 습관도 익혀야겠다. 그래야 팬데믹 이후의 우리 사회를 건전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장경자 패사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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