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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에세이] 아싸들의 회피 성격

2021-01-21 (목)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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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30대 직장인, 자칭 아싸다. 학창 시절부터 누구보다도 인싸가 되고 싶었지만 자기 말에 귀기울여주는 사람은 없다. 용기를 내서 기웃거린 그룹마다 점점 밖으로 밀려서 이젠 혼자 지내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하다. 부서 회의에서 어렵게 내놓은 의견이 채택되지 않으면 A씨는 자기 존재 전부가 무시당한 기분이 든다. A씨는 닉네임으로 소셜 미디어에 포스팅을 한다.

BTS가 지난 해 미국 ‘주간 연예’ 인터뷰에서 설명한 아싸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인싸의 모습으로 포장된 이야기들이다. 팔로워도 없지만 댓글이 안 달리면 거절당한 수치심에 얼른 삭제해버린다.

성격이 인생을 만든다. 누구나 환경이나 상황에 대처하는 독특한 방식이 있다. 여기서 찾아낸 연속적이고 일관적인 패턴이 바로 그 사람의 성격이다. 성격은 생각과 행동으로 나타난다. 독특한 성격이라도 별 문제가 없으면 인생 직진!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성격 장애(PD; Personality Disorder)라고 부른다.


성격 장애는 크게 10가지로 구분된다. 별나고 괴이쩍고 이상스러운 유형, 극적이고 감정적이고 변덕스러운 유형, 걱정이 팔자인 불안한 유형…… 성격장애를 가진 본인은 문제를 인정하지도, 불편하지도 않다. 대신 주변 사람이 힘들어진다. 그래서 상담실을 찾는 사람은 당사자가 아니라 피해를 입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기 십상이다.

10가지 PD 중 딱 하나, 본인도 알고 힘들어 하는 성격이 바로 아싸들이 자주 겪는 회피성 성격장애이다. 이들은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존감도 낮은 편이다. 속으로는 간절히 관계 맺기를 원하면서도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건 내 진면목을 몰라서 그런 거지.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실망하고 떠날거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다음 7개 중 4개 항목에 해당하는지 진단 기준에 비추어보자. 비판받을 걸 떠올리며 아예 사람 만나는 일을 피한다. 상대가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관계를 시작한다. 거절당하는 수치심이 두려워 처음부터 친밀한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부정적인 상황이 벌어지면 ‘나 때문인 게 분명해’라며 자신의 생각을 투영한다. ‘이 장면에 나는 어울리지 않아.’라는 부적절함을 느낀다. ‘난 왜 이리 서투르고 매력 없고 열등한가?’라는 자각이 든다. 새로운 그룹에 섞이거나, 나서서 발표하는 일을 되도록 피한다.?

성격장애는 성인에게만 해당된다. 회피성 PD는 왜 생길까? 최근 연구는 태어날 때부터 가진 유전적 요인과 성장 과정의 환경적 요인이 섞여있다고 보고한다.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적, 정서적 학대, 애정 결핍, 격려 부족, 거부에 시달린 아이들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대처 전략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피하기 쉽다.

전체 인구의 2-2.5%가 회피성 PD 진단을 받는 것으로 보는데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없다. 아싸들은 슬프게도 관계를 간절히 원하는 속마음과는 달리 점점 더 불안해진다. 외롭고 우울하다. 회피는 또 다른 유형의 도피 행동인 중독을 부르기도 한다.

발표 시간에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두려운 사회공포증과는 좀 차이가 있다. 사회공포증은 대인 관계를 하는 동안 ‘자기’ 내면의 반응을 지나치게 관찰하지만, 회피성 PD는 ‘타인’의 반응에 너무 민감해진 나머지, 제대로 말을 못하고 입을 다물어 버린다.

2021년에는 아싸 탈피, 회피성 PD 탈출을 꿈꾸어도 될까? 상담 현장의 경험으로는 겉보기에 잘 나갈 것 같은 인싸들도 속에는 저마다 무겁고 아픈 사연 한두 가지씩은 안고 산다는 사실! 그래서 세상은 그런대로 공평하다.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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