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팬데믹 터널의 끝이 보인다

2021-01-18 (월)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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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회사 화이자는 지난해 12월15자 워싱턴포스트지에 다음과 같은 전면광고를 게재하였다.

“환희. 그들이 그토록 매달린 이유입니다. 긴 근무시간은 늦은 밤으로 변하고, 실패가 불가피해 보일 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론들이 부서지고, 전략들이 충돌할 때, 그리고 중압감만이 가중될 때, 그들은 몇 번이고 원래의 설계도면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COVID-19 백신개발에 헌신한 모든 과학자들이여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모든 난관을 돌파함으로써 환자들의 삶을 변화시킨 그대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당신들로 인하여 과학이 승리했습니다. 화이자”

사진이나 그래픽 없이 넓은 지면 한가운데에 몇 줄의 문구를 간결하게 배열한 이 광고는 온갖 어려움과 장애를 극복하고 역사상 최단기간 내에 COVID-19 백신 개발에 성공한 과학자들을 칭송하는 내용으로 광고 문안이라기보다는 마치 한편의 시를 읽는 것 같은 깊은 울림을 마음속에 일으키고 있다.


통상 10년이 걸린다는 백신 개발을 단 10개월 안에 해냈으니 미국인들의 기동력과 저력은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는 평상시 더디고 여유있게 움직이는 미국인들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지만 막상 국가적인 재난이나 전쟁이 닥치면 놀라우리만치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이 미국인들이다.

1941년 12월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촉발된 태평양전쟁 시 미국의 모든 산업시설들은 순식간에 항공기와 탱크, 무기와 탄약을 생산하는 군수물자 공장으로 전환되었고 모병소에는 자원입대를 위한 긴 줄이 늘어섰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2차대전 승전 후 평화모드로 전환했던 각종 산업시설들은 즉각 군수물자 공장으로 변환되었고, 2001년 911 테러 직후에도 미국인들은 테러와의 전쟁에 모든 힘을 합쳤다.

오랜 기간 임상실험을 통해서 철저하게 안전검증을 할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백신 조기개발에 따르는 여러가지 부작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열과 앨러지 등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백신접종으로 얻는 건강상 이점이 훨씬 클 것이기 때문에 백신 접종은 당연히 권장되어야 한다.

얼마 전 최초로 백신을 접종받은 뉴욕의 흑인 여성 간호사를 필두로 의료진과 구급대원, 소방관, 경찰, 우체국 직원 등 대민봉사자들과 너싱홈, 양로원 등 노인시설, 그리고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들에게 우선 접종하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접종도 불원간 실시될 것이다.

화이자에 이어 모더나에서 개발한 백신도 접종에 들어갔다니 드디어 길고 긴 팬데믹 터널의 끝이 보이는 것 같다. 꽃피는 봄날 팬데믹이 끝났을 때 지긋 지긋한 마스크를 벗고 보고싶은 지인들을 다시 만나 언제 그랬느냐는 듯 끌어안고 서로 웃을 그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다려 본다.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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