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裸木)
2021-01-16 (토)
최동선 수필가
오후 5시 부터 눈이 올거라는 일기 예보는 놀랍도록 정확하였다. 비록 10분 앞서 흩날리기 시작했으나 5시를 지나자 마자 굵어진 눈발은 어둠속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예보 대로라면 내일 아침까지 내릴 것이었다. 김재진 시인의 산문집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았다’를 펼쳐 놓았으나 책장을 넘기지 못한 채 눈은 창 밖을 향해 있었다. 그의 글에서 내 어머니를 읽었고, 창 밖 너머에서 눈을 맞고 서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와인을 두어잔 마시고 소파에 기대어 있다 깜박 잠이 들었던 것 같다. 한기를 느끼며 깨어 스탠드를 켰으나 켜지지 않았다. 얼핏 지나쳐 들었던 정전 예보가 기억났다. 초를 찾아 불을 밝히고 눈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몽당 연필같이 작아진 초가 바닥에 주저앉아 ‘타닥’ 소리를 내며 마지막 불꽃을 피우고 있었다. 스스로 몸을 태워 거대한 어둠과 맞서는 촛불을 보며 세월과 풍파에 스러진 어머니를 떠올렸다. 가끔씩 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근원은 늘 어머니였다.
나는 오랫동안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된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 적당함을 가늠키 어려웠으나 손을 펴서 서로 닿지 않는 거리가 상대 뿐만 아니라 나를 편하게 한다고 믿었다.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지도 모르는 감정의 소모에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적당한 거리둠이 나를 지키고 키워냈다고 변명하면서도 문득문득 사람을 그리워 하는 나 자신을 보며 자가당착에 빠지곤 했었다.
12월을 이틀 남겨두고 수도원으로부터 연하 카드를 받았다. 올해는 Covid로 인해 가지 못했는데도 자신들이 우리 가족을 기억하는 마음이라며 수도자들의 활짝 웃는 얼굴을 담은 카드를 보내왔다. 처음 아이들을 데리고 수도원이 운영하는 요양원을 찾았을 때에는 희생이나 봉사라는 종교적 신념이나 신앙심이라기 보다는 청소년기를 지나는 아이들이 자신보다 힘든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다행히 아이들이 별 거부감 없이 따라 주었기에 폭풍 같은 청소년기를 탈 없이 보낼 수 있었다. 아이들이 대학으로 사회인으로 집을 떠나간 이후에도 아이들과 함께 한 추억을 떠올리며 아내와 함께 방문하곤 했었다.그리고 해가 갈수록 한해를 마무리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치는 우리만의 의식이 되어갔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들이 내 삶의 울타리에 들어와 있음을 느낀다.
지난 3월에 받아 든 편지를 다시 읽는다. 아이의 절망이 너무 맑아서 내가 알고 있는 어설픈 단어를 나열해서는 답장을 쓸 수가 없었다. covid 라는 전염병이 창궐한 엄중한 시절에 초임의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과,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을 그저 손 놓고 바라봐야 하는 현실, 그 가족들의 깊은 절망감을 목도하며 깊은 자괴감에 빠져있는 작은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를 나는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시간이 빨리 흘러 아이의 절망에 굳은살이 박히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사춘기의 열병처럼 초년 의사가 거쳐가야 하는 과정쯤으로 여기며 못본척 하는것이 옳다고 생각했었던것도 같다. 그런저런 이유로 나는 끝내 펜을 들지 못했다. 9개월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는 아직 아이에게 쓸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다. 단지 아이의 절망 앞에 나도 함께 절망 한다는 말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 지기전에 답장을 쓰고자 하는 것은 아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이 느끼는 절망을 철저히 이해하고자 함이다. 절망을 인정해야만 다시 일어 설 수 있다는것을, 겨울의 벌거벗은 나무에서 본 것이다.
어제처럼 마음이 심란했던 하루였다.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것만 같은 잿빛 하늘에서 눈 대신 비를 내려 보냈다. 사람들은 스스로 성탄 트리가 되어 거리를 밝혔지만 나는 여전히 불을 밝히지 못하고 서 있는 벌거벗은 나무였다. 마음을 어디에 두지 못하고, 그렇다고 딱히 갈곳도 없는데 집으로 곧장 들어가기는 아쉬운, 그냥 그랬다.
한해가 다 가도록 아직 미완인 채로 남아 있는 일들이 쌓여 있어서 긴 탄식을 쏟아 내고도 아쉽기만 한 회한의 시간이었다. 문득 앞만 보고 달려 오느라 나를 둘러싸고 있던 이들을 잊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들이 보고 싶었으나 지금은 그 누구도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 울타리를 넘어 이웃을 보려는 생각만큼은 오랫동안 남겨두고자 한다. 집으로 돌아 와 현관문을 열자 아내가 방금 구워낸 빵 냄새가 코 끝으로 ‘훅’ 하고 밀려왔다. 창 밖으로 보이는 겨울 나무가 조금은 외로워 보였으나 금새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렇게 12월이, 한 해가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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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선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