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의 만남은 각별하다. 도시도 하나의 인격체인 것처럼 그 만남에 심상을 남긴다. 나의 첫 미국 대면 도시는 엘에이였다. 2001년 여름, 늦은 나이에 학업을 위해 방문한 그 도시의 여름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 되어서야 시원한 바람이 그날의 노고를 식혀주었고 도시의 입지와 기후가 사막에 근원한 사실을 이후에 알게 되었다. 여느 이주자처럼 낯선 곳에서의 삶의 무게가 일상에 파고들었을 때였다.
‘미국의 도시들은 다 이런가 보다’. 넓고 시원하게 뻗어나간 도시, 껌 한 통을 사려해도 차로 이동해야 하는 도시, 생소한 야자수 나무가 현대 건물과 스패니시 풍의 주거건물 사이에 생뚱맞게 서있는 곳.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들과 빠르게 이동하는 차량들, 어디를 가더라도 느슨한 밀도 사이로 향긋한 바람이 불었다. 마치 처녀 마음 설레게 하는 봄바람같이, 사계절이 늘 비슷해서 계절 감각을 잊기도 했고, 어느 성탄절에 방문한 산타모니카 해변에는 젊은이들의 물놀이가 한창이었다.
9개월쯤 지났을까? 제법 시원한 빗줄기가 이 도시에 처음 내렸고, 나는 비를 사랑하는 사춘기 소년처럼 한참을 바라보다, 이내 운전을 하기로 했다. ‘엘에이: 4 생태의 건축’을 저술한 건축역사학자 겸 비평가 레이너 반함은 자전거 애호가였다. 그는 “나는 도시 엘에이의 원형을 읽기 위해 운전을 배웠다”라고 하여, 이 도시를 평지(flatlands), 해변도시(beach cities), 고속도로(freeways), 구릉(foothills)으로 특징지으며 유랑하였다. 한참이 지나서야 내가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한 행위가 자동차를 구입한 것이었고, 이 광활한 도시에서 비를 감상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이 운전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게 우연이 아닐 게다.
사실 엘에이는 미국에서도 독특한 도시이다. 다른 도시에서 생활을 하고서야 비로소 엘에이의 특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데, 도시의 무제한적 확장(urban sprawl)으로 인해 도시 성장이 다운타운에 집중하기보다 교외로 수평적으로 급성장하였다. 이로써 도시의 여러 현상이 생겨나는데, 주로 자동차로 기인된 단점 중에는 도심 슬럼화와 교통체증 및 개인화로 인한 고립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림’에서 보듯이 온화한 날씨는 홈리스들이 야외에서 생활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족시키기도 한다.
도시는 어떻게 심상을 남기는가? 도시계획가 케빈 린치는 저서 ‘도시의 이미지’에서 도시는 주변 환경(개별 정체성)에서 연속적인 사건(구조 또는 개인과 도시의 관계)과 기억(의미 또는 관찰자의 감성)으로 개인의 심상에 남는다 하였다. 엘에이가 타 도시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사막의 건조 환경에 구축되었다는 점이고, 일상의 사건은 보행이 아니라 차량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로써 속도, 밀도, 스케일을 통하여 도시를 체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시의 특성과 온화한 날씨는 건축디자인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할리웃이라는 영화산업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는데, 건축이 거대한 세트처럼 가벼운 외피로 형태 또한 자유롭게 지어졌다. 프랭크 게리의 디즈니 콘서트홀이나, 모포시스의 에머슨 대학동은 과감한 조형과 외피로 구축한 문화시설과 교육시설의 예이다.
내게 각인된 도시 엘에이의 이미지는 풍요롭고 달콤한 한여름 밤의 꿈처럼 신기루로 기억된다. 라스베가스처럼 특수한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세워진 도시와는 다른 실재 속의 가상의 도시이거나, 과밀도시 서울에서 잠시 다른 세계로 이탈하여 궁극적으로 도착한 판타지의 도시 같기도 하다. 이는 한국의 도시에 적응된 신체가 감각적 혼돈으로 다르게 반응하기 때문일까?
엘에이를 가장 잘 묘사한 한 장의 사진은 아마도 건축사진가 줄리어스 슐만의 실험 주택(Case Study House) #22일 것이다. 할리웃 산 중턱 아래 야경, 끝없이 펼쳐진 평지 위에 보석처럼 균질하게 빛나는 불빛과 그 사이로 자동차가 끊임없이 선을 그린다.
<
이상대 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