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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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 어둠 속에서

2021-01-12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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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어둠 속에서 움튼다. 에델바이스는 봄이 되기 전 아직 추운 때에 이미 꽃을 피운다고 한다. 바다의 조수는 아마도 지구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되었을 것이다. 파도는 들어오고 또 나간다. 조수가 물러간 자국은 지저분하다.

그러나 한 때의 자국만으로 낙심할 건 없다. 조수는 다시 밀려와 만조가 될 것이며 아름다운 파도가 어느 날의 수심을 잊게 해 줄 것이다. 감정이 조수에 끌려다니는 것보다 조수의 변화를 조용히 기다리며 희망 속에 오늘을 착실하게 채우는 것이 지혜롭다.

폭풍이 올 때 닭은 자신의 날개 속에 얼굴을 파묻지만 독수리는 그 바람을 타고 더 높은 곳으로 날아 오른다. 흔히 사람들은 고통과 환난의 해결책을 외부에서 찾지만 사실은 고통과의 용감한 투쟁 속에 그 해결책이 있는 경우가 많다. “아플 때는 잘 앓아야 한다”는 말처럼 고통을 지긋이 씹어보는 인내의 맛을 터득할 때 해결의 길이 보이는 수가 많다. 나의 아버지는 추운 날에도 웃통을 벗어 젖히고 냉수 마찰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찬 맛을 즐기는 것이다.


기다림이란 여유있는 마음이다. 한 가지에 붙들려 속상해 하지 말고 다른 길도 있다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영어 표현에 extra mile 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말로는 ‘여분의 십리’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예수가 말한 “5리를 가자는 사람에게 10리를 동행하여 주어라”는 교훈과 같다. 마음의 폭이 넉넉해야 한다. 느긋함과 넉넉함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남자 아이들의 겨울 놀이로서는 팽이치기가 최고였다. 팽이는 쳐야 돌아간다. 무자비한 것 같아도 팽이는 쳐야 아름다운 율동을 보인다. 악이 있어 선을 알듯이 고통이 있어 행복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고통은 하나님이 더 좋은 세상을 보게 하시려는 시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에는 가시도 은총이라는 역설이 나오는 것이다. 한번은 야외 예배를 나갔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누구의 생각이었는지는 몰라도 큰 돗자리를 여럿이 머리 위에 쳐들고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돗자리춤이다. 비가 오고 있었지만 모두가 웃고 정말 즐거운 야외예배였다.

바이올린의 음색은 나무의 질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1만 2,000 피트의 고산 지대인 로키 산맥에서 목재를 얻는다. 그곳은 1년 내내 바람이 강하여 나무들이 한 쪽으로만 기울어질 정도이다. 이렇게 바람에 시달린 나무들이 좋은 소리를 낸다.

뉴질랜드의 키위나 펭귄은 새는 새인데 날지를 못한다. 날지 않아도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에 그런 환경에 오래 적응하다 보니까 진화 과정에서 나는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저항의 긍정작인 면도 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다. 모진 북풍이 강한 바이킹과 그들의 조선술을 개발 시켰다. 인류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은 기술향상 면에서 추운 나라들이 따뜻한 나라들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고통은 순종을 배우게 하고 순종은 구원함에 이르게 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우리는 날마다 두 개의 독약을 먹고 산다. 그것은 나트륨(Na)과 염소화합 물로 표백제로 쓰는 클로라이드(Cl)인데 이 두 개의 독약이 합하면 Nacl 즉 소금이 된다. 날마다 먹는 소금은 두 종류의 독약이 합해진 물질인 것이다.

고통을 극복하는 길이 고통의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 손을 잡는데 있는 것이다. 세계평화도 상대를 제거함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을 잡는 것으로부터 이뤄진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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