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백두대간이 있듯이 미국에는 아팔래치안 트레일이 있다. 줄여서 AT라 부르는 이 산길은 남부 조지아주 스프링어 마운틴 정상에서 시작해서 북부 메인주의 최고봉인 카타딘 마운틴까지 아팔래치안 산맥을 따라 이어지는 장장 2,200마일의 등산로다.
14개 주를 관통하는 산길 9,000리를 배낭 하나 짊어지고 나무나 바위에 그려져 있는 직사각형의 백색 AT 표지판을 따라 5, 6개월간 걷고 또 걸어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AT를 완주한 사람을 드루 하이커(Through Hiker)라고 한다. 드루 하이커는 아팔래치안 트레일 관리사무소로부터 완주증명서를 받으며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셀러브리티 대우를 받는다.
AT 드루 하이킹은 주말 산행이나 며칠간의 캠핑여행과는 차원이 다르다. 30파운드 가까이 되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반년간 매일 15마일 이상 험한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여간한 의지력과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산길을 가다보면 곰이나 뱀 등 야생동물들과 맞닥뜨릴 때도 있고 라임병을 옮기는 틱의 위협에도 항상 노출되어있다. 거의 혼자 걸을 때가 많으니 외로움과도 싸워야 한다. 매년 2,000명 정도가 AT완주에 도전하고 있으나 대부분 중도 포기하고 다섯 명 중 한명만이 완주에 성공한다고 한다.
드루 하이커들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배낭의 무게이다. 먹고, 자고, 입는 모든 것을 배낭 하나에 넣고 장기간 등에 지고 다녀야하니 단 1온스의 무게 차이도 몸으로 느끼는 하중이 다르다. 하이커들은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 물병 대신 주먹만 한 작은 정수기 하나를 가지고 다닌다. 가다가 개울이나 연못을 만나면 물을 걸러서 마시는 것이다.
오랫동안 산길을 혼자 걷는 것이 힘들고 외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야생화들이 눈부시게 피어있는 아름다운 고원 지대를 지나가기도 하고 높은 곳에 오르면 발아래 펼쳐진 산해만리 장관을 내려다보며 호연지기를 키운다. 그림 같은 노을빛 속으로 해가 지면 밤하늘에 총총히 떠있는 별들을 바라보며 대우주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느끼고 천막 안에 피곤한 몸을 누이면 코요테와 부엉이가 자장가를 불러준다.
AT 드루 하이킹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를 떠나 반년 가까이 산에서 지내야하기 때문에 드루 하이커들의 연령층은 대개 60대 이상의 은퇴자들이거나 아직 직장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젊은층이 많다.
또한 하이커의 거의 전부가 백인들로 인종 편차가 심한 편이나 최근 한인사회에서도 AT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인 드루 하이커들도 일 년에 몇 명씩 나오고 있다.
AT 드루 하이킹은 산을 좋아하는 필자의 버킷 리스트 1호이기도 하다. 더 늦기 전에 새해에는 한번 도전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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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호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