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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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에서 읽는다

2021-01-09 (토) 김영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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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걸어가는 노부부를 무심코 따라 걸은 적이 있다. 오래도록 함께 살아왔을 그들의 뒷모습을 통해 나는 상상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생의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는 몰라도 은발의 나이에 이르도록 부부가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워 보였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엇인가를 향해 앞으로 내딛는 게 아니라 그들 등 뒤로 멀어져간 시간을 향해 있는 듯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들을 따라가며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이 있던 나의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다.

누군가와 마주할 때 앞모습에서 가장 시선이 먼저 가는 곳은 얼굴이고, 눈이다. 얼굴은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집적이므로 잔주름 하나도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표정으로 마음 속까지 들여다보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천 가지 표정도 담을 수 있다는 얼굴은, 좋은 의도에서든 아니든 자신의 의지대로 꾸밀 수 있고 상대의 시선을 의식한 표정을 지어낼 수도 있다.


점잖고 온화한 얼굴로 자신을 관리하는 사람이나 만면에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사람은 천성이 그런 줄 알기 쉽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본인의 이해관계가 얽힌 일 앞에서는 가면 벗은 속내를 드러내며 등을 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가 사람의 앞모습만 보고 너무 믿는다면서, 사람은 돌아설 때야 비로소 참모습이 보이는 거라고 조언 해준 지인이 있다. 그렇다고 떠날 때를 미리 추측하며 인간 관계를 이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내 인생의 노트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은 뒷모습이 더 많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나는 열한 살이 넘으면서부터 방학이면 외할머니 댁에 갔다. 하루 이틀은 시골 생활이 신기하다가도 사흘도 못 되어 집에 갈 궁리를 했으니 외가에 머무는 건 고작해야 일주일이었다. 그런데도 그 일주일은 이상한 힘으로 외할머니와 나를 묶어놓았다.

떠나는 날에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아예 입을 떼지도 못했다. 흙먼지 날리는 찻길에 서서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작아지던 할머니 모습.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소처럼 슬픈 눈으로 할머니 손을 바라보면서도 나 역시 돌아앉지 못했다. 그때 우리는, 말은 하지 않았어도 무의식 중에 서로에게 울고 있는 등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신혼시절, 주부 초년생인 내가 하는 요리는 다 처음 만들어보는 거였다. 내가 찌개를 좋아하는 남편 식성을 맞추지 못해 고민하는 걸 알고 가까이 지내는 선배 교사가 어느 날 퇴근길에 우리 집엘 같이 가자고 했다. 이런저런 재료를 들고와서 소매를 걷어부치고 자기네 부엌처럼 들어서더니 두어 가지 찌개를 후다닥 만들었다.

자기 살림만으로도 벅찬 처지여서 찌개가 다 끓기도 전에 식구들 저녁이 늦을 세라 허둥거리며 돌아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그날 선배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의 등에 가벼운 깃털 하나도 더 얹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십 대에 만나 십 년을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던 선배였다. 멀리 떨어진 학교로 전근하여 헤어진 후로 우리는 이따금 전화나 메일로 안부를 주고 받으며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곤 했다. 그러다가 타국에 살고 있는 우리를 정년퇴직 하고 남편과 같이 찾아 왔다.

3주를 함께 지내며 그들과 마주앉아 나눈 대화 중에 미래 시제는 거의 없었다. 먼 과거와 가까운 과거를 드나들던 어느 날, 우리는 서로에게 ‘당신은 기억 못하는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먼저 꺼낸 신혼시절 찌개 이야기에, “내가 그랬었나?” 하며 멋쩍어하던 그녀. 할머니가 된 선배의 굽은 등은 젊었을 적보다 더 푸근했다.

얼굴은 입술로 눈빛으로 수없이 말을 하지만 등은 닿을 때의 느낌으로 소통한다. 등을 쓸어주면 서러움도 두려움도 잦아들던 아련한 기억 속의 시간이 살아난다. 손바닥이 등을 가볍게 툭툭 치기만 해도 위로와 격려의 온기가 햇볕처럼 번진다.

아기를 업으면 업은 이의 등과 아기의 가슴이 체온을 나누며 교감한다. 얼굴을 돌려 외면하면 무관심과 앵돌아진 표현이 되지만, 등은 돌아앉았을 때도 말 없는 말을 걸어온다. 등과 등을 맞대고 앉으면 상대편 심장의 박동을 통해 저편의 마음이 감지된다. 등은 그렇게 침묵으로 주고받는 언어의 터널이 될 수 있다.

고개를 돌려 조금 더 먼 곳으로 시선을 향해 저만치 지나가버린 등 뒤의 시간을 돌아본다. 흘러내리던 땀방울과 눈물방울들, 먼발치에 있는 그리움, 등에 붙을 듯 가까이 있는 사랑도 보인다. 내 등을 가만히 밀어주는 사랑이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구나. 그 사랑의 힘으로 등이 울고 있을 때조차 따뜻했구나. 지금 나의 등은 어떤 모습일까.

<김영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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